brunch

라이킷 댓글 공유 14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영화 뒷담화
by 글쓰는 백구 Jan 06. 2017

<언어의 정원 The Garden of Words>

애니메이션의 거짓말로 그려낸 '사랑'이란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널 붙잡을 수 있을 텐데

(일본의 고전 시집 ‘만엽집’ 중에서)


비가 내리는 아침에는 지하철로 갈아타지 않고 개찰구 밖으로 나갔다. 하늘의 향기를 데리고 내려오는 비가 좋다. 오전 수업을 가지 않고 신주쿠교엔에서 구두 스케치를 한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연하의 애인과 떠났다. 고등학생인 ‘타카오’는 구두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어느 날, 신주쿠교엔에서 구두 스케치를 하던 타카오는 초콜릿을 안주로 술을 마시고 있는 여성 ‘유키노’를 만난다. 그 이후,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언제나 함께였다. 마음이 통했다. 타카오는 유키노에게 ‘걷고 싶어 지는 구두’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러나 6월의 장마가 걷히면서 마음이 구름처럼 흘러가는 것 같았다.  

(작품의 주요 배경이 신주쿠교엔(新宿御苑, 신주쿠에서 가장 큰 공원), 이곳에서 음주는 금지되어 있다. 에필로그 이후에 해당 문구가 나온다.)

애니메이션 영화 <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제작한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2013년 5월 31일에 일본에서 개봉했다. 한국에서도 2013년 8월 14일 개봉했었다. 2016년 7월 7일에 재개봉했으며, 최근 <너의 이름은.>의 인기에 힙입어 2017년 1월 12일 재개봉한다. <너의 이름은.> 흥행과 더불어 화제가 되고 있는 그의 전작 <언어의 정원>을 보았다.


감독의 전작 <초속 5센티미터>에서도 그랬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그가 다루는 감정은 섬세하다.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다. 섬세한 감정은 음악과 영상미에 묻어난다. <너의 이름은.>은 감성과 영상미에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더한 수작이다.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싶은 그의 감성은 <언어의 정원>과 <초속 5센티미터>로 이어갈 수 있다.



감독이 만든 작품들의 줄거리에는 일관된 테마가 있다.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남녀 주인공’ 을 테마로 하여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남녀 주인공이 물리적으로 아주 멀고, 성장배경이 환경적으로 다른 <초속 5센티미터>와  <너의 이름은.>, 한쪽이 혼수상태여서 교감할 수 없는 상황이 나오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 그 테마는 대부분의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다.

<언어의 정원> 도 마찬가지로, 나이의 차이 혹은 직업적 대비로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남녀'가 주인공이다. 이처럼 남녀 주인공의 차이를 통해 이야기 구조를 만들고, 주인공들의 시적인 독백으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감독은 ‘빛의 마술사’ ‘색채의 마술사’ ‘배경왕’이라고 불린다. 그의 작품은 영상미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 장마철을 시기로 한  <언어의 정원>에서 비가 내리는 배경은 일종의 리듬을 만들어 준다. 사실적인 장면에서 만들어낸 리듬은 감정의 속도를 조절한다. 서정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카메라 워크와 호흡은 안정감을 주고, 빗속 풍경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태양은 한 개지만, 두세 개가 있는 것처럼 설정하여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는 장면을 선택하여 사용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애니메이션의 거짓말을 활용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 아시아 영화 거장들의 신작이나 화제작을 영화제에서 엄선해서 소개하는 이벤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언어의 정원>의 무대는 현대지만, 그려내고자 한 것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는 감정의 이야기다. 감독은 상대방과의 유대나 약속 없이, 감정의 장소에 우두커니 서있는 개인을 그리려고 했다.

‘연애’는 근대에 들어서
서양에서 유입된 개념입니다.
과거 일본에는 ‘연애’가 아니라
‘사랑’이 있었습니다.

‘연애’와 ‘사랑’을 분리하게 되면, ‘관계’와 ‘감정’이라는 본질적인 부분에 다가갈 수 있다. 무엇을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진다. ‘관계’라는 것은 두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둘 사이의 어떤 것에 무게를 두는 것이다. ‘감정’은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느끼는지’의 문제다. 자신의 ‘감정’만을 고민하던 사람들에게 ‘관계’라는 개념을 던지고 생겨난 물음들이 있다. 그것이 현대의 남녀관계 갈등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타문화에서 유입된 ‘연애’가 ‘감정’을 우선시하던 사람들에게 변화를 일으킨 것을 아닐까.



‘만엽집’은 일본의 고전 시집이다. 만엽집에 의하면 ‘언어의 잎새’라는 말은 지금 ‘언어’로 정착했다. ‘말씀 언’과 ‘잎 엽’ 자를 합치면 일본어로 ‘언어’라는 뜻이다. 비 내리는 정원에서 타카오와 유키노가 말과 감정을 교환하는 것이 영화의 중심이기 때문에 이 제목으로 정했다.


(최근작 <너의 이름은.> 예고편에서 칠판에 만엽집(萬葉集)이 적혀있는 장면은 <언어의 정원>의 팬들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 작품 전까지 ‘커플 브레이커’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 전 작품들에 나온 남녀의 사랑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자신이 여자에게 인기가 없어서 로맨틱한 사랑이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어의 정원>에서는 눈 오는 날 신주쿠교엔에 홀로 찾아온 타카오가 유키노의 편지를 읽는 것으로 끝맺음하여 모호한 희망을 남겼다. 시작 부분에 만엽집에 실린 시를 읊는 것은 영화 전체 스토리에 대한 요약이고 복선이다. 타카오는 영화 클라이맥스에 유키노에게 답가를 한다. 러닝타임 46분, 한 편의 시낭송을 들은 것 같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고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주신다면
난 머무를 겁니다.







keyword
magazine 영화 뒷담화
영화를 통해 우리내 삶과 감정을 들춥니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영화 뒷담화]
(feat. 스포일러)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