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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 Mar 23. 2018

11.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고아

아람볼에 도착한 첫날부터 한 아시아 청년과 자주 조우하게 되었다. 처음은 첫 일몰 때였다. 지는 해를 바라보고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명상 연습을 하는데 해를 가리며 목례를 하는 사람 탓에 정신이 들었다. 나도 자연스레 목례를 했고 그렇게 서로를 지나쳤다. 다음은 메인로드였다. 역시 서로 목례를 했다. 일본인인가. 말을 붙여볼까 했는데 타이밍을 살짝 놓쳤다.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버스 스탠드 근처였다. 깔랑굿까지 탐방해보자는 결심에 오토바이를 빌려 큰길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이 때에는 그가 먼저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응? 나 일본어 못하는데"
"한국 사람이야?"
"응"

'유스케'라는 이름을 가진 이 일본 친구는 4개월 일정으로 두 번째 인도를 찾은 거였다. 마침 한국인 한 무리를 함피로 떠나보낸 터라 그는 나의 '밥친구'가 되었다. 고아 이곳저곳을 걷고, 좋은 것을 같이 보고 밥을 함께 먹었다. 밥을 먹을 때면 나온 접시의 반절을 내게 부어주며 본인은 전부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건 마찬가지였기에 너도 먹어보라며 비워진 반을 내 음식으로 채워 넣었다. 그러면 그는 결국 접시를 핥는 것처럼 바닥까지 비워냈다. 음식을 전한 사람의 예의인지, 습관인지, 아니면 배가 정말 항상 고팠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가 한 번은 나에게 물었다.
"기독교야?"
"어.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보여?"
"좋아. 종교를 가지는 건 좋은 것 같아."
"왜?"
"모르겠어. 그런데 무언가를 믿고 있는 건 좋은 것 같아"
"왜 물어본 거야?"
"그냥. 그게 좋은 것 같아서." 

그리고는 다시 접시를 기울여 포크로 음식을 입에 부어 넣었다. 어쩌면 그가 지금 하지 못하는 것에 관심을 담아 물어본 것일 수도 있겠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아니, 심지어 보이는 것을 믿는 것도 어려운 세상이라서. 
 
그는 간자(힌디어로 마리화나) 여행을 목적으로 삼 개월째 인도 여행 중이고 그 간자를 과자 사듯 살 수 있는 히피의 고향, 환락 천국이라는 고아에 2주째 머물고 있었다. 입에 간자를 물고 엑스터시를 집어삼키며 '보이지만 영혼이 없는' 약물에 기대는 자신에게 어떠한 공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약에 취해 고개를 떨구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담았을까. 또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비웠을까. 그는 내일 아침 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며 일찌감치 인사를 청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며 이제껏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 중에 가장 밝은 미소를 보였다. 태양에 그을려 까매진 그의 모습이 다시 수행을 떠나는 사두처럼 보였다. 작별 인사를 하며 그가 신을 믿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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