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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 Mar 25. 2018

15. 함피의 하루

함피

함피에서만큼 해를 의식하는 생활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른 새벽 눈을 비비고 일어나 뜨는 해를 보겠다고 돌 언덕을 달려 오른다. 그리고 정상에 닿으면 해가 잘 보일만한 곳을 찾아 기대하며 정좌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이내 빨갛게 달아오른 해가 이마를 비추고, 눈 코 입과 턱까지 보여주게 되면 기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고대하며 보고 싶던 아침해라지만, 우리는 이 빨간 해가 이제부터 우리를 하루 종일 괴롭힐 것을 알고 있다.

해가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시간은 낮 열 두시 정도부터이다. 그 뜨거운 맛을 보기 싫다면 할 일을 그전에 다 끝내야 한다. 함피에서는 관광을 하거나 도시를 이동하려는 사람과 '모닝 비즈니스'를 외치며 이들을 실어 나르는 릭샤 운전사, 여행지답게 무언가를 팔려고 달려드는 각종 상인들이 어우러지는 오전이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 중 하나이다. 

열두 시가 넘어가면 밥을 빨리 먹고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심심하다면 책을 읽거나, 지금처럼 글을 쓰거나 그늘 안에서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한다. 오후 해의 덕을 보는 거라면 강제로 쉬는 시간을 얻게 해 숨을 고르게 해준다는 것 그리고 빨래가 쉽게 마른다는 것 정도. 날씨가 더울 때는 낮에 40도가 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38도는 쉽게 닿는다.

대피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된다. 오후 느지막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다시 슬슬 밖으로 걸어나와 아침에 올랐던 마탕가 힐이나 강 건너 선셋 포인트에 간다. 지는 해를 바라보기 위해서다. 저마다 물을 한 통씩 들고서 천천히 돌덩이를 밟고 붉고 큰 해를 기대하며 언덕을 오른다. 그리고 정상에 닿으면, 아무 말 없이 눈높이에 선 해를 똑바로 쳐다본다. 

맹렬히 땅을 내리쬐던 해는 조용히 턱부터 자취를 감추다 이윽고 정수리까지 구름 속에 잠기고 사람들은 이제야 저녁을 먹으러 내려간다. 그리고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은 아니지만 마을은 다시 활기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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