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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 Apr 23. 2018

28. 얕은 친구

다즐링

다즐링에서 편안한 며칠을 보내고 벌써 마지막 날이 왔다. 다즐링에서 콜카타로 한 번에 가는 방법은 없다. 먼저 합승 지프를 타고 뉴잘패구리까지 가서, 거기에서 기차를 타고 콜카타까지 가야 한다. 우선 합승 지프를 타기 위해 지프 스탠드로 내려왔다. 최대한 가운데 창문 쪽 자리에 앉으려 지프 두 대를 보내고 한 시간을 기다릴 각오로 빈 지프를 예약해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사람이 들어왔지만 정말 한 시간이 지나도록 지프는 떠나지 않았다. 그때 옆에 앉은 청년이 이해하지 못할 인도말로 질문 같은 것을 나한테 건넸다. 엷은 미소를 띤 청년은 농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어떤 나라 사람인지 궁금해 물어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질문을 넘겨짚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본 것일까 싶어 '코리안'이라고 대답할까 하다가 솔직하게 물어보자 싶어 무슨 말 하는 거냐고 되물어보았더니 앞에 있는 다른 인도 사람이 '이 지프 언제 출발하는 거냐고 물어보는 건데요' 하고 통역해주었다. 


"나도 모르지"


웃으면서 대답했다. 같이 웃었다. 그게 그 친구와 친해지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띄엄띄엄 영어 단어와 가끔의 문장으로 그와 대화했다. 그는 다즐링에 와서 부모님을 만나고 이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 친구 덕분에 내려오는 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나와 대화를 나누려고 했고, 내가 귀찮아서 음악을 귀에 꽂을라치면 이어폰 한쪽을 빼앗아 자기 귀에 꽂으며 같이 음악 듣기를 청했다. 친근한 미소 때문인지 그게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느덧 밤이 되고 뉴잘페구리 옆 실리구리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5킬로미터 정도 가면 뉴잘페구리에 닿는 것이었다. 그 친구에게 악수를 건네며 작별을 고했다. 

"나 이제 가야 돼. 안녕"
"역까지 데려다주고 싶어"
"왜? 나 혼자 갈 수 있는데"
"그러고 싶어"

세 시간의 우정이 이렇게 깊은 걸까. 그 친구는 버스 옆자리에 같이 올라타 그렇게 얘기했다. 나는 아직 그의 이름도 모르지만 그는 내 옆에 앉아서 몇 킬로 떨어진 기차역까지 데려다주는 친구가 되어있었다. 

"콜카타 까지 데려다주고 싶어"
바깥을 응시하며 그가 느닷없이 한 마디를 꺼냈다. 

"왜?"
"그러고 싶어"
"그다음에 뭐하게? 나 콜카타 도착한 날 공항으로 가서 태국으로 떠나. 같이 가서 뭐하게?"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다즐링에서 내려올 때부터 짐도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바람 같은 사람인가. 보통 고향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갔다가 헤어질 때면 부모님이 이것저것 막 챙겨주지 않나. 몰래 나온 거였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존중과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진 순간이 찾아왔다. 

"돈 좀 줘. 백 루피만." 

나는 지난 네 시간 정도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줄 돈이 없다고 하니 그는 절반을 깎아 먹을 것이 필요하다며 다시 오십 루피를 요구했다. 그때 저번 달 고아에서 머리를 땋아 준 인도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인도에서는 친구 만들기가 쉬워져. 이렇게 악수하는 거야. 그럼 우리는 친구가 돼. 그런데 그만큼 얕은 친구가 되는 거야. 그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또 헤어지기 쉬울 거야. 인도에서 친구관계는 그런 것 같아.' 

"싫어." 

방어하듯 내뱉은 그 한 마디로 공기가 서먹해졌다. 서로 창 밖만 쳐다보았다.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나고 우리는 뉴잘패구리역에 도착했다. 
말없이 밖으로 내렸고, 기차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수많은 길거리 음식들이 있었고 기차역에 가까워 올 수록 작은 매점 같은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짜이와 물을 파는 매점 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거 내 샵이야"
"진짜?"
"진짜."
"진짜야?" 

그는 다즐링에서 나를 처음 봤을 때처럼 씨익 웃더니 내 팔을 잡고 방향을 틀어 가게로 걸어갔다. 주인과 아는 사이인 듯 서로 이야기를 짧게 건넸다. 

"우리 아빠야"
"아빠 다즐링에 있다며"
"먼 아빠"
"가족?"
"먼 가족"


그는 짜이를 한 잔 따라서 나에게 건넸다. 달다. 삼십 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돈을 요구했던 그가 권하는 짜이를 한 모금 마시면서 우리 관계를 생각하니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다즐링에는 얼마나 있었어?"
"1년."
"그럼 이 가게 주인아저씨 1년 만에 본 거야?"
"응"

이 사람이 하는 말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 이야기인가. 정신이 멍했다. 우정의 무료 짜이를 마시고 가방을 들어 우리는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걸으며 그가 다시 물었다.

"백 루피만 주면 안 돼?"
"안돼."

백 루피 정도 주는 것이 나에게 큰 손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 관계가 우스워지는 것 같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역에 닿았고, 인사를 청했다. 그는 따뜻하게 인사를 받았고 나는 고개를 돌려 역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 인도 여행 마지막 도시인 콜카타로 들어가는 관문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인도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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