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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Jan 26. 2023

말할 수 있는 비밀 2

보는 것처럼 읽기와 읽는 것처럼 보기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글을 읽는다. 지하철에 앉아 읽는 책이라도 시험 준비와 흥미 위주의 독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 비오는 날 오후 방에 앉아 읽는 소설과 수능 시험지에서 만나는 소설이 같은 느낌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학창시절 소설 수업 시간을 떠올려보자. 소설 공부를 하기 전에 선생님께서는 깔끔하게 정리된 판서를 하신다.


  갈래 : 단편소설, 순수소설

  성격 : 낭만적, 사실적

  구성 : 5단구성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소재 : 만남, 이별

  주제 : 이별의 슬픔과 극복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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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가끔 문장이나 대화 등을 언급하시면서 "이건 행동 묘사를 통한 심리의 간접 제시야! 필기해"라고 말씀하신다. 소설을 읽고 나면 인물 관계나 줄거리를 반드시 정리하라 하신다. 이렇게 배운대로 내신 문제를 풀 때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정작 수능 시험장에서 낯선 작품을 만나게 되면 도대체 무얼 중심으로 읽어야 하고, 정답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나는 왜 항상 감으로 문제를 푸는 것 같은지 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문제는 시험에만 있지 않다. 이러한 수업은 결과적으로 문학 작품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키고 만다. 그렇다고 꼭 모든 글을 재미있게만 읽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목적에 맞는 제대로된 독서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수능 시험에서 만날 수 있는 소설 읽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려고 한다. 수능 출제 현장에서 출제 업무를 맡았던 필자의 경험을 근거로 한 이야기이기에 작가님들이 보기에 불편한 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현장에서 소설 출제를 맡은 분들은 우선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 이어 어떤 부분을 잘라서 지문으로 제시할지를 결정한다. 수능 지문 가운데 가장 긴 편에 속하는 게 '소설'이지만, 시험지에 작품 전문을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생각하는 것처럼 주로 갈등 중심 부분, 배경 묘사가 잘 된 부분, 심리 묘사가 탁월한 부분 등을 골라 출제하게 된다. 쉽게 얘기하면 '문제 내기 편한 부분'을 골라 제시한다는 말이다.


  지문을 선정했으면 문제를 출제한다. 소설은 보통 지문 당 4문항에서 5문항을 출제한다. 따라서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와 추론 또는 비판하는 문제 등을 골고루 섞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출제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일명 킬러 문제도 여기에 포함된다.


  지문을 고른 뒤 문제를 출제할 때는 교육과정에서 항상 강조해 온 내용들을 다루게 된다. 소설의 시점과 인물의 성격, 관계가 먼저 다뤄진다. 그리고 사건의 의미, 갈등 양상, 시대 상황을 전제로 한 추론, 공간 배경의 상징성 등을 두루 다루게 된다. 만약 시험 준비를 위해 소설을 읽는다면 출제 과정을 역으로 활용하면 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회부터 다루기로 한다.

가~보자고!

  요즘 다양한 곳에서 OTT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나 영화들이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 잡고 있다. 흔히 영화를 볼 때 먼저 어떤 인물이 주인공이고, 누가 반동인물인지를 떠올린다. 인물이 등장할 때 표정, 행동이라든지, 배경 음악 등을 통해 직감적으로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이 갈등을 겪는 원인과 시간, 공간 배경 등을 통해 사건의 전개 과정도 예측해 본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여성 시청자들'은 거의 작가급의 추리력을 지니고 있다. 다음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 지까지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드라마를 보기도 하니 말이다.

  소설을 읽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작 부분에 제시된 배경 묘사 등을 통해 분위기를 느껴보고, 주동과 반동 인물을 구분한다. 그리고 이들의 갈등 양상을 떠올리고 결말을 예측하면서 읽어본다. 인물의 대사나 행동 묘사 등을 통해 성격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모든 사항을 출제자는 수능 문제로 만들게 된다. 굳이 /갈래, 성격, 구성단계, 소재, 주제/정리하지 않아도 충분히 낯선 작품을 읽을 있다는 말이다.

드라마를 보듯이 소설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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