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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Jan 27. 2023

말할 수 있는 비밀 2-(1)

숨은 사람 찾기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3 가지 중요한 요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주제, 구성, 문체'가 소설의 3 요소다. 특정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작가만의 '문체'와 다양한 '구성'을 활용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구성'은 다시 3 가지 요소를 갖는다. '인물, 사건, 배경'이 그것이다. 결국 소설은 작가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이 창조한 '인물'이 다양한 '배경' 속에서 벌이는 '사건'을 개성있는 '문체'로 표현하는 것이다.


  수능 시험에서 소설을 접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파악해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작품 속에 서술자인 '나'가 등장하는 지 아니면 작품 밖 서술자가 작품 속의 다양한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지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소설의 시점을 확인한 뒤 인물의 성격을 근거로 인물 관계를 정리하며 작품을 읽어야 한다.


  다음 글을 보고, 시점과 인물의 정리를 통해 주제를 파악해 보자.



  궐녀자기와 같이 10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10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말 덕택으로 그 일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 기오?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두마. 눈은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은 듯하더마.”

  “눈물도 안 나오더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열 병 때려뉘고 헤어졌구마.”

하고 가슴을 짜는 듯한 괴로운 한숨을 쉬더니만 는 지난 슬픔을 새록새록 자아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이야기를 다하면 뭐하는 기오.”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 묘지로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현진건, <고향> 중에서


 

  이 글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수탈로 인한 우리 민족의 비참한 삶’을 주제로 전달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나'는 서술자이면서 '그'가 전하는 '궐녀'(3인칭 대명사, 주로 여자를 가리킴)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찰자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그'의 말을 전할 때는 객관적인 태도를,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는 솔직하면서 주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작가가 1인칭 관찰자적 시점으로 작품을 쓴 이유를 직접 물어볼 길이 없다. 하지만 추측건대 일제치하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비극적인 모습을 객관적 시각으로 전달하고 이에 대해 주관적인 판단을 덧붙이려고 한 건 아닐까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비참하게 변한 두 남녀의 모습과 마지막 부분의 노래를 통해 당대의 사회상을 집약적으로 제시하여 주제를 드러낸 작품이다.


  다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이다. 서술자가 인물을 묘사하고 있는데 웃음이 입가에 살며시 번질 것 같은 재미있는 표현이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은 못 된다. 그렇다고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큼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보다 십 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몽톡한 것이 내 눈에는 하릴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는 감참외가 제일 맛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단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 김유정, <봄봄> 중에서



  는 작품의 서술자다. 점순이를 지극히 주관적인 태도로 묘사하고 있다. 어리숙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말투가 '나'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순진하면서도 우직한 모습의 '나'는 점순이를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구수한 맛이 느껴지는 토착어가 많이 나와 읽는 사람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지닌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태도다. 그런데 자신이 어리숙하다는 점조차 모르는 서술자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아래의 작품은 작가가 시점의 특징을 역이용하여 서술자로 하여금 등장인물을 속이고 독자를 속이고 있다. 다른 요소는 제외하고 오직 시점과 인물의 성격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읽어보자.

 


[앞부분의 줄거리] 구청 병사계 직원인 ‘’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 ‘’과 우연히 만나 의미 없고 무의미한 대화를 나눈다.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을 때, 한 사내가 다가와 오늘 아내가 죽었다고 하며 술자리를 같이 하기를 희망한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외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째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단무지와 양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오.”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주십시오.”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낙했다.

  “멋있게 한 번 써 봅시다.”라고 사내는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중국집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는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고, 돈은 천 원이 없어졌고, 사내는 한쪽 눈으로는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 있었고, 안은 도망갈 궁리를 하기에도 지쳐 버렸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고, 는 “악센트 찍는 문제를 모두 틀려 버렸단 말야, 악센트 말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거리는 영화에서 본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했고, 그러나 여전히 소주 광고는 부지런히, 약 광고는 게으름을 피우며 반짝이고 있었고, 전봇대의 아가씨는 ‘그저 그래요’라고 웃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하고 아저씨가 말했다.

  “어디로 갈까?” 안이 말하고,

  “어디로 갈까?”라고 나도 그들의 말을 흉내냈다.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

                                                                      (중 략)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 사환이 지적해 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 하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살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중에서-



  작품에 나오는 주요인물은 모두 3 명이다. '나'는 작품의 서술자이자 주인공으로 구청에서 병사계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나'의 생각을 주관적인 입장에서 솔직하게 드러낸다. '나'가 작품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독자'는 서술자에게서 신뢰감과 친근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시점의 특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독창적으로 주제를 전달한다. 우선 작품은 '1964년이라는 산업화가 이루어진 시대에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춥고 쓸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이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작품 속 인물 중에 '사내'는 산업화에서 소외된 인물을, '안'은 이기적이고 물욕에 사로잡힌 인물을, '나'는 인정이 있고 약자를 배려하는 인물을 상징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것이 작가가 독자를 속이는 모습이다. '사내'와 '안'의 성격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속 마음이 너무도 다르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반전의 주인공 같다. 그렇다면 그 근거를 찾아보자.


“모두 같은 방에 들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나'가 '사내와 안에게 한 말들이다. 겉으로 볼 때는 사내를 위하는 인정 많은 모습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표리부동한 태도로 일종의 립서비스를 남발하는 인물로 보인다. 이또한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 가운데 하라나는 인식이 작가에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만약 '나'가 진정 '사내'를 위한다면 '안'과 상관없이 함께 방에 들거나 화투 놀이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 말처럼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라며 결국 혼자 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꿈도 안 꿀 정도로 푹 잔다. 다음 날 아침 '안'이 '사내'의 자살을 알고 '나'를 깨울 때도 자신은 마치 아무 것도 몰랐다는 듯한 말을 하고 있다.


 “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역시 ……”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사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예?"라며 놀란듯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은 이어 나오는 "역시(알고 있었음)"라는 말과 상반된다. 죽은 사람을 두고 누가 알고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모습도 그렇다. 양심에 비유된 '개미 한 마리'를 피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안'과는 조금 다른 현대인의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소설은 우리 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소외된 자와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면서 있는 그대로 '날것'을 보여주는 '안'과 겉으로는 인정 많은 사람인 척 립서비스를 남발하지만 결국은 자기 이익만을 찾는 '나'의 파편화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제목이 '서울, 1964년 겨울'인 것이다.


  감상을 위해 소설을 읽으면서 굳이 이렇게까지 분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소설 속 인물의 성격과 관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소설 읽기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백구 : 인물이 영어로 뭐지?

독자 : 뭐긴. 캐릭터(Character)야.

백구 : 그럼, 캐릭터(Character)가 우리말로 뭐야?

독자 : 당연히 인물이지.

백구 : 아니야. 우린 성격으로 불러. 그래서 인물을 찾을 때는 그 성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 거야.


인물(성격)을 어떻게 설정하는지가 사건과 갈등의 전개 방향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며, 이를 통해서 주제가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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