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도 내가 만드는 것이리니!
습관적으로 토요일 저녁만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결국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실망을 하게 된다. 지금 말하는 내용은 복권을 산 주말의 '내면 풍경'이다.
하지만 이제 복권을 사지 않기로 했다. 당첨 확률이 낮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돈이 아까워서도 아니다. 단지, 내 인생의 운명을 다른 것의 운에 맡기기 싫어졌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내 삶에서 '나'는 없고, 다른 것을 위한 '나'만 존재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소유욕으로 인한 '나'의 소멸 같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나'가 아닌 게 오래된 느낌이다.
'나'는 '가족'을 위해 살고, '자식'을 위해 살고, '회사'를 위해 산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밑바닥에는 진짜 '나'가 없다. 가령, 내가 자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산다고 한다면 그건 결국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소유물'로 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식'이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잡으면 그게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봐야겠으나, 결국 자식의 성공이 '나'의 성공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자식을 나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결론을 맺을 수밖에 없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의 행복을 위해 내가 일하고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남들에게 아내의 행복을 보여주고 싶은 나의 욕망 때문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아내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내면의 욕망은 곧 아내를 소유하고 있다는 욕망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 나이의 가장들에게 '나'는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 일을 하면서도 남 때문에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정말 하기 싫은 일일까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답은 '아니다'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인 동시에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셈이다.
강아지를 한 껏 꾸미고 유모차까지 대령하여 모시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내 자식들도 어쩌면 저 강아지들처럼 꾸며지고 실려지고 해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나'로 존재하고 '남'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버린다는 건 아닌 것이니 쉽게 오해나 단정 지으면서 삶을 비교 내지 평가하지 마시길 바란다. 어떤 일을 하든 내 삶의 중심은 '나'이고 모든 존재는 그 존재함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으리니 그 다른 것들을 소유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여 '나'는 '나'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