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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걱정을 낳는다!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부르고......

by 하늘을 나는 백구

초등학교 2학년 때, 성남에서 자양동으로 이사를 왔다. 성남에 위치한 상대원초등학교에서 나름 공부를 잘하던 나는, 서울 아이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중 시험을 보게 되었고, 한 문제를 틀렸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아무리 봐도 내가 푼 답이 맞는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이거 제가 맞아요. 선생님이 알려준 게 틀린 것 같아요.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럼 내일 학교에 가서 꼭 선생님께 말씀드려라.


다음 날까지도 나는 내 답이 맞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막상 선생님 앞에 나서려던 순간,
‘내 생각이 틀렸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그대로 집에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전날 부모님께 큰소리쳤던 게 부끄러웠고,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설명했던 것도 민망했다. 결국 슬며시 지우개를 들고 정답을 고쳤다. 그리고 선생님께 시험지를 다시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내일 부모님 모시고 오너라.

나는 깜짝 놀라

무슨 일인데요?

하고 물었지만, 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이 손가락으로 시험지를 가리켰다. 시험지 위에는 붉은 색연필 자국이 지우개 자국에 번져 있었다.


그날, 나는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동네를 배회하다 놀이터에 앉아 ‘차라리 죽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 나이에 하는 그런 생각들이란 으레 집이 가까워지면 끝나기 마련이었다. 결국 저녁 먹기 전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물론 마지막까지 내 답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틀렸다는 걸 알게 되니 나도 모르게 답을 고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버지는 30센티미터 자를 꺼내 종아리를 때리셨고, 다음 날 어머니가 학교에 가셨다. 종아리를 맞는 동안,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요즘, 내가 하는 많은 고민들이 어린 시절 시험지 답안을 고쳤을 때의 그것보다 더 심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금 더 무겁고 깊이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부르고, 걱정은 새로운 걱정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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