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마흔세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은 사람을 보는 안목, 특히 '가장 힘들 때 드러나는 그 사람의 진짜 얼굴'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 한다.
자연의 이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성품과 참 많이 닮아 있단다. 비가 넉넉히 내릴 때는 개울물도, 강물도, 바닷물도 모두 찰랑찰랑 가득 차 있어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지. 겉보기에는 모두가 풍요롭고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가뭄이 들면 상황은 달라진다. 얕은 개울물은 금세 말라버리고, 깊지 않은 강물도 바닥을 드러내며 쩍쩍 갈라지지. 그제야 물속에 감춰져 있던 지저분한 뻘과 날카로운 돌멩이들이 흉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깊고 넓은 바다는 다르단다.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으며, 그 깊은 속을 쉽게 내보이지 않지.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일이 잘 풀리고 여유로울 때는 누구나 좋은 사람일 수 있어. 밥값도 잘 내고, 허허 웃으며 관대함을 보이지. 그건 그 사람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단지 '상황'이 좋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 가뭄처럼 어려움이 닥치면,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물론, 돈이 마르고 상황이 꼬이면 누구나 마음이 조급해지고(속된 말로 '쫄리고') 힘든 건 사실이야. 불안하고 예민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의 밑바닥을 보이며 추해지지는 않는단다.
진짜 어른은 힘들수록 입을 닫고, 남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며,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려 애쓴다. 반면, 그릇이 작은 사람은 힘든 상황이 오면 그 화살을 밖으로 돌려버리지. 이것이 바로 상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단다.
아빠가 몸담고 있는 학원계를 예로 들어볼까? 요즘 경기가 많이 어렵다고들 한다. 학생 수가 줄고 학원 운영이 힘들다는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지.
그런데 이런 위기 상황에서 어떤 관리자(원장이나 대표)들은 자신의 바닥을 여실히 드러낸단다.
남 탓형 리더: 학원이 안 되는 원인을 자신의 경영 전략 부재나 안일함에서 찾지 않고, "강사들이 열정이 없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이 없다"라며 아랫사람 탓으로 돌리는 사람.
책임 회피형 리더: 상황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직원들의 급여를 건드리거나 인원을 감축하면서, 정작 본인의 이익은 털끝 하나 손해 보려 하지 않는 사람.
감정 배설형 리더: 매출이 떨어지면 그 불안함을 이기지 못해 직원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모욕적인 언사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
자신의 행동이나 계획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뒤로한 채, 상황의 결과를 오로지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이런 사람들은 가히 '바닥이 드러난 얕은 개울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아빠가 너희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바닥을 보이는 것도 실망스러운 일인데, 하물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수시로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면 절대 곁에 두지 마라.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막말을 하거나, 작은 이익 때문에 신의를 저버리거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 말이다. 평소에도 바닥이 훤히 보이는 사람인데, 진짜 위기가 닥치면 그 사람이 너희에게 어떤 행동을 할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니?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너희 주변에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바다 같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 스스로가 깊은 바다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살다 보면 너희에게도 견디기 힘든 가뭄이 찾아올 거야. 그때 힘들다고 소리치며 너희 안의 진흙탕을 남에게 튀기지 말고, 묵묵히 그 깊이를 지키며 파도를 잠재우는 품격 있는 사람이 되거라.
너희가 보여줄 그 깊고 푸른 바다를 기대하며.
너희의 영원한 등대,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