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가족들과 외식하고 케이크를 한 조각 먹었다. 그 외에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언제부터 생일이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되었다. 일상을 하나하나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생일은 많은 이벤트가 있는 특별한 날일 테지만, 내 나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생일은 남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줘야 비로소 깨닫는 날이 되어가고 있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특별한 날. 하지만 내게 생일은 한 번도 그렇게 특별한 날이었던 적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생일 파티 같은 걸 하는 편도 아니었고, 조금 자라고 나면서부터는 그저 그날 태어났다는 이유로 선물을 받는 날이 되었다. 케이크도 크게 좋아하지 않았고, 점점 가지고 싶은 것도 없어졌다. 이번 생일에도 받은 선물이 없다. 가지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가지고 싶은 걸 물어봐도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그냥 받지 않았다. 가지고 싶은 물건이 없게 된 지는 꽤 되었다. 굳이 뭔가를 더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의도치 않게 책장 세 개를 꽉 채우고도 넘치는 양의 책을 가지고 있다. 책은 사서 읽지 않고 무조건 빌려서 먼저 본 다음, 꼭 다시 읽을 것 같은 책들만 산다. 그렇게 해도 이렇게 많은 물건을 가지게 되었는데, 정말로 뭘 모으기 시작했다가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항상 내 방 한 면을 채운 책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쓰레기가 되는 것 아닌가? 나에게만 의미 있던 물건들은 내가 죽고 나서 그대로 소각장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물건에 대한 이런 생각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들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는 일평생 뭔가를 사 모으는 것을 좋아하셨다. 여행을 가면 기본적으로 엽서를 사야 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도록을 샀다. 옛 유물을 새것으로 만들어놓은 기념품 같은 것도 빼놓지 않았다. 어릴 때 외할아버지의 아파트에 가면 그렇게 먼지 쌓인 물건들과 마주했다. 거실까지 둘러싼 책장은 덤이었다. 한자와 영어로 된 제목을 가진 수많은 책이 빼곡하게 꽂힌 책장. 그 선반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올려져 있었다. 도자기부터 불상까지. 방 4개짜리 집의 대부분은 책, 잡동사니, 그리고 그림으로 차 있어서 제대로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다. 마구잡이로 쌓여서 먼지만 쌓이는 형국이었고. 장례식 이후 그 집을 치우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사실 그것도 기적이나 다름없는 속도였다.
그 수많은 물건은 외할아버지의 세 자녀가 골고루 나누어 가졌다. 그것도 힘든 과정이었다. 가지고 가 봤자 집의 인테리어나 자신의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아버지의 물건을 버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값나가는 물건들도 아니고 관리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버리기도 힘들고 팔리지도 않아서 나누어 가지는 것이 최선이었다. 외할아버지에게는 애착이 있는 물건 들이었겠지만, 남은 가족들에게는 부담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때, 나의 물건들도 저런 끝을 맺겠구나 싶어졌다.
물리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물건이 그렇게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걸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 살아가며 엄선된 나의 컬렉션은,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맥락과 의미를 잃고 그저 일련의 잡동사니로 추락한다. 외할아버지의 물건들이 전부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처럼. 정말 엄청난 유명인이 되지 않는 이상, 내가 가진 물건은 큰 가치가 없을 예정이다. 수많은 인간이 자신을 연장하기 위해 자손을 낳는다고 생각하는데, 소유하는 물건 또한 그 안에 포함된다. 나의 돈, 물건, 집, 땅… 등등, 물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존재에게 주는 것. 어쩌면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영생을 얻는 하나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유명세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는 나는 나의 죽음이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줄곧 생각해왔다. 내가 죽고 한 줌의 사람들이 슬퍼하고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면. 거대한 우주적 시간 속에서, 한 인간의 삶은 아무 의미도 없다. 사라지고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다가 언젠가 그마저도 없어지겠지. 그건 참 편안한 생각이다. 사라져 버릴 것이라면 뭐든지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그저 그런 인간으로 죽겠지만, 그러든 말든 상관없을 테니까. 계속해서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마는 나에게 삶의 유한함은 반가운 소식이다.
선물 없는 생일을 보내고 나는 한살이 많아졌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 어떤 느낌도,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변화는 의식적인 행동에서 나오기에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아무것도 아닌 날이 특별한 힘을 지녔으면 하는 마음이 들고 만다. 아무도 아닌 나를 뭔가로 바꿔주기를 바라는 모순적 바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