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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Jul 27. 2022

07 잠 안 오는 밤이 늘어간다




어떤 밤은 아무리 졸려도 잘 수 없다. 침대에 누운 순간부터 잠이 드는 때까지 온갖 불안한 생각이 가득 찬다. 나는 오늘 하지 못한 것, 내일 해야 할 것, 먼 과거의 실수, 그리고 미래에 올지도 모르는 상황을 걱정한다.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아서 결국 핸드폰 화면을 켠다. 눈을 더 이상 뜨고 있기 힘들 때까지. 피곤하다는 생각이 다른 모든 생각을 눌러버릴 때까지.




내일이 온다는 사실이 끔찍한 날도 있다. 그런 날들은 어떻게든 오늘을 늘려보기 위해 깨어 있는다. 바쁘고 할 일이 쌓여있었던 오늘은 그대로 내일로 이어지고, 할 일은 사라지지 않겠지. 잠자는 시간이라도 쪼개 쉬어보겠다는 나의 마지막 발악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조차도 알차게 보내지는 못한다. 결국 OTT 사이트의 홈 화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한다. 이건 너무 우울해. 이건 웃길 것 같은데 취향이 아니야. 이건 너무 길어. 이건 아직 완결이 안 났네. 조금 있던 시간은 점점 줄지만, 그 시간을 완벽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망설이기만 한다. 이미 그렇게 피하고 싶던 내일은 왔지만 애써 모르는 척한다.


그렇게 점점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는 시간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불이 꺼지고 나서도 몇 시간 동안이나 뜨거워진 핸드폰을 들고 있다. 이리 누웠다가 저리 누웠다가, 충전기를 꽂았다가 뺐다가. 시간은 죽이고 내 생각도 죽일 수 있다. 문제는 그걸 멈추기 어려워진다는 것이지만. 시간이 뒤로 밀리는 건 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사실 할 것도 없고 볼 것도 없다. 소셜 미디어 피드를 계속 새로고침 하거나 끌리는 것 없는 유튜브 추천 동영상 사이를 돌아다니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화면을 끄고 뇌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놓아주는 것보다 이렇게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더 낫다. 자동으로 불안한 생각으로 넘어가는 내 생각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그때그때 피하는 것을 택하고 마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자겠다고 불을 끄고 눕는 시간이 오히려 가장 기다려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갖 상상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그때가 유일했으니까. 그 이외의 시간은 전부 입시에 할애해야 했다. 정신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은 침대에 누워서,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과 학교를 전전하는 그 짧은 시간뿐이었다. 나는 계속 공부와 성적에 대한 생각에 둘러싸이다가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 현실 도피적인 상상이었다. 나와는 관련 없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서, 매일 밤 그 이야기를 점점 늘려갔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기에는 죄책감이 들어하지 못했기에, 내 상상력이 최고의 오락거리가 되어 주었다. 누군가는 자투리 시간까지 영어단어를 외웠지만 나는 그런 시간을 적극적으로 버렸다.


입시와 성적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 대학생이 되자, 대신 졸업 이후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극심해졌다. 점점 잠이 들기까지의 몇 시간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다른 생각을 하자고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결국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뭘 해야 내가 원하는 길을 갈 수 있을지 따위를 미리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불안한 상상이 계속해서 침투했다.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아니 근데'로 시작하는 문장이 뚫고 들어왔다. 내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덮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간 모양이었다. 아직 오지도 않은, 그리고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들에 너무 많은 힘을 들이기 시작했다. 미래는 불투명하기에 희망차고 동시에 암울했다.




인간은 언제나 그래 왔던 걸까? 매일 밤 내일 일어날 일들을 걱정하며 동굴에서 잠이 들었던 것일지 궁금하다. 동굴이든 아파트이든 간에 나는 어디에서나 불안에 떨지도 모르겠다. 부정적이고 침습적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때 심해진다.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서 무의식으로 빠져들려고 노력하는 순간, 뇌는 그 반대의 행동을 한다. 어떤 자세로 누워도 불편하다. 이불은 너무 더운 것 같고 선풍기 소리는 갑자기 거슬린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지나가는 누군가의 오토바이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차라리 그런 것이 신경 쓰인다면 다행이다. 가장 문제인 건 꺼버릴 수 없는 머릿속의 내 목소리이다. 제발 다른 생각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나의 뇌는 계속해서 오늘 하지 않은 일들을 반복해서 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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