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 그저 제 일상입니다만 6

(괜찮다는 아주 부끄러운 용기)

by 한선우

“네 성적으로 아무 데도 못 가는 게 차별이고 부정이고 비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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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나 시절 (한선우로 개명함)

출석부에서 가장 끝에 불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한 씨’ 그때부터였다.

“두 줄로 서주세요~” 를 조금 겁내하는 게

두 줄씩 앞에서부터 세어보던 나는 그 줄이

내 앞에 끊기는 걸 6년 내내 겪어야 했다.

처음 학기가 시작할 때 유난히 힘들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짝꿍이랑 그때 부쩍 친해지기도 하고 앞 뒤에 있는 친구랑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미 친해진 앞 짝꿍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만큼 변죽이 좋은 성격도 아니었기에 학기가 시작 되고 3개월은 늘

힘들어 했었다.


오히려 좋아! 왜 둘이 가야 되지?

혼자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렇다고 누가 나에게 다가오는 걸 거부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었다. 나이가 이만큼 40이 되어도 누군가와의 거리를 좁혀나가고 관계를 형성하는 게 자연스럽지도 쉽지도 않다. 이런 부분이 비슷한 사람들과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가게 되고, 또 찾는 것 같다.


나와 온도가 비슷한 사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항상 맨 마지막에 불리다 보니 혼자 앉게 되었고,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는 반에 몸이 아픈 친구들이 한 명씩 있었다. 그 아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공격의 대상이었다. 먼저 나서서 막아 줄 만큼 용감한

어린이는 아니었지만 함부로 대할 만큼 못 된 어린이도 아니었다. 그렇게 내 옆자리는 6년 동안 몸이 아픈 친구의 자리가 되었다.


”지나야 괜찮지? “

선생님의 물음에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가 아니었다.

“괜찮아요”


아니요! 라고 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다 아니라고 할 텐데 나까지 아니라고 하면

저 친구는 얼마나 많은 거절을 겪어야 할까

그게 다였다.


“네” 도 아닌 “아니요” 도 아닌

“괜찮아요” 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용기이자

그 친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었다.

나보다 약해서도 도움을 줘야 돼서도 아닌


내 짝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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