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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Jul 21. 2019

게이샤의 맛

-스핀오프 07: 에스메랄다 스페셜 마리오

주차장에 들어서기 위해 잠깐 멈추었다. 순간 뒤에서 뭔가가 퉁 쳤다. 기어를 파킹으로 옮기고 주차 브레이크를 밟고 내렸다. 뒤차가 범퍼를 친 것이다. 가 보니 살짝 표시만 났다. 뒤차의 운전자는 내리더니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아는 사람이던가? 머뭇거리는데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는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자기가 옮긴 카페로 한 번 들러 달라고 메모를 남겼던 사람이다. 카페에서 서빙할 때와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조금 미안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알아보지 못했으니. 

“죄송해요. 어쩌죠?”

“범퍼끼리 살짝 닿은 건데요, 뭐. 괜찮습니다.”

나는 다시 차를 운전해서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투병을 시작하고 자주 왔던 곳이다. 장릉, 나무와 숲이 아름답고 호수가 두 개나 있다. 


“표는 제가 샀어요.”

그 사람이 매표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고맙습니다.”

“제가 죄송하죠 뭐. 혼자 오셨어요?”

“예.”

“제가 남긴 메모는 받으셨죠?”

“예......”

“혹시 산책 끝나고 시간 되시면 저랑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아주 맛있는 드립커피를 사 드릴게요. 차에 흠을 냈는데 그냥 가기는 죄송해서요. 한 번 뵙고 싶기도 했고......”

“......”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그 사람이 똑 분질렀다.

“한 시간 뒤에 입구에서 뵈어요.”

말하고는 뛰듯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여기저기 스며 있는 기억들을 불러내고 잠깐 멈춰 서기도 했다. 그래도 금방 한 바퀴 돌았다. 전에는 아내의 속도에 맞추어 걸어서 길었던 모양이다. 

코스타리카의 게이샤 커피 열매, 이 글의 게이샤는 파나마에 있는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생산된 것. 같은 종이다.

우리가 간 곳은 유명한 드립커피 전문점이었다. 주인하고는 잘 아는 것 같았다.

“다행히 주인이 계시네요. 에스메랄다 스페셜 마리오를 부탁드렸어요.”

메뉴판을 보니 오성급호텔 커피숍의 가격이었다. 

“너무 비싼데요?”

“남의 차에 흠집 낸 데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싼 거죠.”

그러면서 웃는다.   

“게이샤 커피 가운데 최고로 치는 에스메랄다 스페셜 마리오는 원두 가격부터 아주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워요. 한 번 드셔 보셔요. 아무 데서나 마실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렇게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군요?”

“덕후들이 있고, 그분들은 가격을 그리 따지지 않으니까요. 문제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인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생두도 늘 같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향기로웠다. 더없이 깔끔했다. 삼키고 나면 아주 살짝 단맛의 여운이 감돌았다. 블랙커피를 마신다는 묵직한 부담은 조금도 없었다. 금방 뜨거운 커피를 두 잔 마셨다.    

“따뜻한 물을 조금 마셔보셔요. 향기로운 단맛의 여운이 입 안 가득 퍼질 거예요.”

“그런 것 같긴 한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신맛이나 텁텁한 맛 같은 건 조금도 없네요. 좋은 차를 마시는 느낌이에요.”

“비슷한 맛으로 유명한 것이 인헤르토 마이크로 모카라는 게 있어요. 그것도 구하기 힘든데, 보통 커피콩과 달리 좁쌀만 한데 아주 맛이 좋아요.”

“그렇군요.”

“게이샤가 최고의 커피가 된 건 그리 오랜 일은 아니에요. 전에는 블루마운틴이나 코나를 좋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건 순전히 일본의 상술에 의해 포장된 것이라고 해요. 루왁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요. 맛은 별론데 비싸기만 한 거죠. 

요즘은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들이 모여서 공개적으로 커피 맛을 평가해서 좋은 커피를 가려요. 그 과정에서 게이샤가 최고가 된 거죠. 그러니까 믿을 만해요. 뭐 그렇다고 해도 한국사람들 입맛에도 맞느냐, 하는 건 다른 문제이지만요...... 

아무튼 이 게이샤는 파나마에 있는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생산되는데 최고의 원두는 경매로만 팔려요. 보통 원두가 일 킬로그램에 만원 안팎인데 이건 이십오만 원가량 하니까 엄청나게 비싼 거죠.”

“그런데 이름이 왜 게이샤인가요? 일본의 게이샤와 관계가 있나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원래 에티오피아의 게샤Gesha 지역 야생커피였는데, 개량되어 지금의 게이샤가 된 거라고 해요. 그러니까 게샤를 잘못 발음해서 게이샤가 되었는데, 그게 굳어져서 게이샤가 된 것일 뿐이에요.”

커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척척 대답해 주었다.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질 때 전화번호를 주고받긴 했다. 나는 그 사람 이름 뒤에 괄호하고 게이샤라고 적어 넣었다. 에티오피아 남서부 지역,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나라, 이제 언젠가 가 볼지도 모르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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