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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맛

-스핀오프 07: 에스메랄다 스페셜 마리오

by 강창래

주차장에 들어서기 위해 잠깐 멈추었다. 순간 뒤에서 뭔가가 퉁 쳤다. 기어를 파킹으로 옮기고 주차 브레이크를 밟고 내렸다. 뒤차가 범퍼를 친 것이다. 가 보니 살짝 표시만 났다. 뒤차의 운전자는 내리더니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아는 사람이던가? 머뭇거리는데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는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자기가 옮긴 카페로 한 번 들러 달라고 메모를 남겼던 사람이다. 카페에서 서빙할 때와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조금 미안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알아보지 못했으니.

“죄송해요. 어쩌죠?”

“범퍼끼리 살짝 닿은 건데요, 뭐. 괜찮습니다.”

장릉_2013년겨울.jpg

나는 다시 차를 운전해서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투병을 시작하고 자주 왔던 곳이다. 장릉, 나무와 숲이 아름답고 호수가 두 개나 있다.


“표는 제가 샀어요.”

그 사람이 매표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고맙습니다.”

“제가 죄송하죠 뭐. 혼자 오셨어요?”

“예.”

“제가 남긴 메모는 받으셨죠?”

“예......”

“혹시 산책 끝나고 시간 되시면 저랑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아주 맛있는 드립커피를 사 드릴게요. 차에 흠을 냈는데 그냥 가기는 죄송해서요. 한 번 뵙고 싶기도 했고......”

“......”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그 사람이 똑 분질렀다.

“한 시간 뒤에 입구에서 뵈어요.”

말하고는 뛰듯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여기저기 스며 있는 기억들을 불러내고 잠깐 멈춰 서기도 했다. 그래도 금방 한 바퀴 돌았다. 전에는 아내의 속도에 맞추어 걸어서 길었던 모양이다.

Geisha-Cherries-01-Chispita-Costa-Rica.jpg 코스타리카의 게이샤 커피 열매, 이 글의 게이샤는 파나마에 있는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생산된 것. 같은 종이다.

우리가 간 곳은 유명한 드립커피 전문점이었다. 주인하고는 잘 아는 것 같았다.

“다행히 주인이 계시네요. 에스메랄다 스페셜 마리오를 부탁드렸어요.”

메뉴판을 보니 오성급호텔 커피숍의 가격이었다.

“너무 비싼데요?”

“남의 차에 흠집 낸 데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싼 거죠.”

그러면서 웃는다.

“게이샤 커피 가운데 최고로 치는 에스메랄다 스페셜 마리오는 원두 가격부터 아주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워요. 한 번 드셔 보셔요. 아무 데서나 마실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렇게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군요?”

“덕후들이 있고, 그분들은 가격을 그리 따지지 않으니까요. 문제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인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생두도 늘 같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에스메랄다-커피가루.jpg

향기로웠다. 더없이 깔끔했다. 삼키고 나면 아주 살짝 단맛의 여운이 감돌았다. 블랙커피를 마신다는 묵직한 부담은 조금도 없었다. 금방 뜨거운 커피를 두 잔 마셨다.

“따뜻한 물을 조금 마셔보셔요. 향기로운 단맛의 여운이 입 안 가득 퍼질 거예요.”

“그런 것 같긴 한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신맛이나 텁텁한 맛 같은 건 조금도 없네요. 좋은 차를 마시는 느낌이에요.”

“비슷한 맛으로 유명한 것이 인헤르토 마이크로 모카라는 게 있어요. 그것도 구하기 힘든데, 보통 커피콩과 달리 좁쌀만 한데 아주 맛이 좋아요.”

“그렇군요.”

“게이샤가 최고의 커피가 된 건 그리 오랜 일은 아니에요. 전에는 블루마운틴이나 코나를 좋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건 순전히 일본의 상술에 의해 포장된 것이라고 해요. 루왁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요. 맛은 별론데 비싸기만 한 거죠.

요즘은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들이 모여서 공개적으로 커피 맛을 평가해서 좋은 커피를 가려요. 그 과정에서 게이샤가 최고가 된 거죠. 그러니까 믿을 만해요. 뭐 그렇다고 해도 한국사람들 입맛에도 맞느냐, 하는 건 다른 문제이지만요......

아무튼 이 게이샤는 파나마에 있는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생산되는데 최고의 원두는 경매로만 팔려요. 보통 원두가 일 킬로그램에 만원 안팎인데 이건 이십오만 원가량 하니까 엄청나게 비싼 거죠.”

“그런데 이름이 왜 게이샤인가요? 일본의 게이샤와 관계가 있나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원래 에티오피아의 게샤Gesha 지역 야생커피였는데, 개량되어 지금의 게이샤가 된 거라고 해요. 그러니까 게샤를 잘못 발음해서 게이샤가 되었는데, 그게 굳어져서 게이샤가 된 것일 뿐이에요.”

cupOfcoffee.jpg

커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척척 대답해 주었다.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질 때 전화번호를 주고받긴 했다. 나는 그 사람 이름 뒤에 괄호하고 게이샤라고 적어 넣었다. 에티오피아 남서부 지역,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나라, 이제 언젠가 가 볼지도 모르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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