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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Sep 19. 2019

스파게티니 알라 푸타네스카

-스핀오프 21: 이탈리아 매춘부의 음식

일요일 오후, 도서관에 잠깐 들러 필요한 책을 빌리고 그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스마트폰에서 똑똑똑 노크소리가 났다.

“작가님 저랑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데이지였다. 좀 뜬금없었지만 뭐, 어떤가. 이렇게 한가로운 오후에.

“예, 좋지요. 어디서요?”

피렌체에서요.”

이탈리아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얼음을 굴리는 펭귄이 날아왔다.

“아재 아니랄까 봐 그러셔요?”

“천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한 시간 뒤에 뵈어요.”

피렌체에 들어섰다. 데이지는 한쪽 구석에 앉아 책에 코를 박고 있었다. 무슨 책일까? 꽤 두꺼웠다. 나를 보더니 곧바로 책을 커다란 가방에 챙겨 넣고 일어섰다.

“작가님은 배고프지 않으세요?”

오랜만에 푸타네스카를 먹고 싶었다.

“저녁을 먹긴 해야겠는데...... 뭘 먹죠?”

“작가님은 뭘 드시고 싶으세요?”

솔직하게 말했다.

저녁으로 푸타네스카를 먹을까 했어요.”

“그게 뭔데요?”

“스파게티 종류인데 이탈리아 짬뽕이랄까.”

“해물이 들어가나요? 맵기도 하고?”

“해물은 서양 젓갈이라고 할 수 있는 앤초비만 들어갑니다.”

“아, 프리즐 선생님이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이로군요.”

프리즐 선생은 초등학생들을 위한 과학책 주인공이다. 애니메이션도 있지만.

“세상에, ≪신기한 스쿨버스≫도 아세요?”

“참나, 작가님이 그 타이틀을 아시는 게 더 신기하네요.”

“저야 뭐, 책이라면 온갖 종류를 다 보고 싶어 하니까요. 게다가 유명하기도 하고, 과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이니까.”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나저나 그 푸타네스카라는 건 보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파는 건가요?”

“잘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거예요.”

데이지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더니 말했다.

“푸타네스카는 매춘부라는 뜻이네요?”

“예, 매춘부들이 짬뽕처럼 만들어 먹던 게 시작이었나 봐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스파게티군요.”

“좀 그렇죠?”

“그런 거 파는 데 없어요.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요, 뭐. 작가님이 만들어주세요.”

거침없는 데이지의 성격에 덩달아 그러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거실과 부엌을 떠올려보았다. 어떻게 해놓고 나왔더라? 잘 모르겠다. 늘 해두던 그대로겠지.


“온통 책이군요. 다 몇 권쯤 되나요?”

“만 권쯤 될 거예요. 음식 만드는 동안 책 구경하셔요.” 말하면서 침실 문을 닫았다. “여기는 침실이니까 들어가지 마시고요.”

“아니에요, 작가님 오늘은 음식 만드는 거 구경할래요.”

스파게티 삶을 물을 올려두고 재료를 준비했다. 통마늘을 꺼내 벗기고 얇게 썰었다.

“깐 마늘이 아니고 통마늘을 쓰셔요?”

“그동안에는 깐 마늘을 썼는데 음식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군요. 깐 마늘은 향이 약하거든요.”

까만 올리브를 꺼내서 반으로 잘랐다.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썰어둔 마늘을 넣고 약한 불로 익혔다. 색깔이 조금 변할 때쯤 올리브와 케이퍼를 넣었다.

“저건 연어 먹을 때 곁들이는 것이군요.”

예 맞아요. 케이퍼는 비린 것과 잘 어울리죠. 앤초비를 넣을 거라. 그런데 나중에 바질이나 파슬리도 넣을 건데. 향이 강한 걸 싫어하시지는 않아요?”

말하면서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치고 스파게티니를 넣었다.

“예, 그렇지는 않아요. 그런데 스파게티면이 그렇게 가는 것도 있어요?”

“이런 걸 스파게티니라고 해요. 소면 같은 거죠. 금방 삶을 수 있어요.”

앤초비를 넣고 조금 더 섞어가며 볶다가 토마토 통조림을 따서 넣고 저어가며 끓였다. 토마토와 잘 어울리는 오레가노를 뿌리며. 다 삶은 스파게티는 건져서 큰 볼에 담고 올리브 오일로 무쳐두었다. 그래야 면이 뭉치지 않고 맛도 좋다. 다 된 쏘스를 그 위에 부었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이탈리안 파슬리 잎을 훑어 넣고 섞었다. 향기롭다. 접시에 담고 그 위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뿌려주었다.    

데이지는 깨끗하게 접시를 비웠다.

“배고팠나 보군요. 좀 더 줄까요?”

“아니에요. 배불러요.”


카페라테를 만드는데 데이지가 그릇을 치우려고 했다.

“그냥 앉아 있어요. 내가 하는 게 좋아요. 내 부엌이니까. ^^”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카페라떼도 아주 맛있어요. 이건 어떻게 만든 거예요?”

“콜드브루와 물, 우유를 일대 쩜칠대 이로 타서 열정적으로 117번을 저으면 그 맛이 납니다. 좋은 콜드브루와 열정적으로 117번 젓는 게 가장 중요해요. 가끔 118번 저을 때도 있는데, 그게 더 맛있을 때도 있어요.”

“보기보다 재미있으셔요.”

“보기에는 어떤데요?”

“예능을 다큐로만 받아서 자주 천벌 받으실 것 같아요.”

“천벌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고쳤어요. 제가 보기에는 데이지도 천벌 꽤나 받았을 것 같은데요......”

“그랬죠. 호호”

“아까 카페에서 보던 책이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맞죠?”

“앗! 그걸 어떻게 아셔요?”

“그 정도 두꺼운 책이 그리 많은 건 아니잖아요. 제가 가진 책 가운데에서 가장 비슷한 것을 떠올려 본 거죠. 그런 책은 대개 재킷을 벗기고 읽잖아요. 두꺼우니까 오랫동안 읽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하드커버 색깔과 두께 감각을 익히게 되더군요.”

“그런데 그 정도 두께와 색깔이 그 책뿐인가요?”

“퍼뜩 생각해 봤죠. 대충 천 쪽 되는 책 가운데 하드 카버 색깔이 비슷한 게 뭐가 있는지요. 두 개가 떠올랐어요. 다른 하나는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였어요. 둘 중 하나를 찍어본 거죠.”

“하드 카버 두께와 색깔까지 기억하시다니. 무심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무척 섬세하시군요.”

젊을 때부터 많이 듣던 말이다. 조금만 가까워져도 사람들은 이렇게 나를 평가한다. 도대체 어떤 문제에는 그렇게 무심하면서 또 어떤 문제에는 그렇게 섬세한 겁니까?조금 힐책하는 듯한. 앞의 어떤 문제는 상대방이 관심을 가진 문제일 것이고, 뒤의 어떤 문제는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이겠지. 아니구나, 앞의 문제는 상대방이 가진 내 관심에 대한 관심에 대한 내 관심일지 모른다.

“미안해요. 젊을 때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잘 고쳐지질 않네요. 혹시 제가 어떤 것에 무심했는지 알려주실래요?”

데이지는 영 딴소리를 했다.

“책 한 권 빌려가도 되죠?”

“예, 돌려주시기만 한다면.”

데이지는 서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식탁과 부엌을 정리했고. 설거지까지 끝냈으니 시간이 꽤 흘렀을 것이다.

“이거 빌려갈게요.”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꽤 오래된 소설인데요.”

“예,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고는 나설 채비를 했다. 나도 외투를 걸치고 자동차 키를 챙겼다. 다시 피렌체로 갔다. 근처 실외 주차장에 데이지 차를 세워두었기 때문이다. 길가에 내 차를 세우고 조금 걸었다. 보름달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겨울바람 끝에 묻어 온 봄 냄새가 향기로워서 그랬는지도. 데이지는 차에 타려다 말고 나에게 다가와 살짝 껴안고 스치듯 가볍게 키스하더니 꽃샘추위처럼 돌아서 갔다. 나는 떠나는 차 뒷모습을 보며 잠깐 서 있다가 달빛을 받으며 걸어 나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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