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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Nov 17. 2019

어둠의 자식이 쓴 판자촌 이야기

-1980년대의 베스트셀러 : 아무도 관심 없던 ≪꼬방동네 사람들≫

“나는 소설이나 책에 관해서는 좇도 모르는 사람이다” 

≪꼬방동네 사람들≫(1981년)의 작가 이동철(본명 이철용)은 전편인 ≪어둠의 자식들≫(1980년)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자의 학력은 초등학교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제대로 다녔다고 보기 어렵다. 기지촌에서 자랐는데 ‘벌거벗은 깜둥이와 양갈보들의 수세미 같은 뽁(여자 성기)을 코앞에 들여다보면서 컸다. 미군부대 주변에서 펨푸(호객)도 하고 뚜룩(좀도둑)도 치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 뒤는 말할 것도 없다. 온갖 범죄로 수없이 감옥을 드나든 ‘어둠의 자식’이 되었다. 

그러다가 허병섭 목사(작중에는 공 목사)를 만나 ‘간신히, 맹목적인 오까네(돈)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때 작가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야학을 만들어 ‘어둠의 자식들’을 모아 배우며 가르쳤다. 서른두 살에 자전적인 소설 ≪어둠의 자식들≫을 썼다. 


처음에는 황석영의 작품으로 알려졌다(책 표지에 황석영이라는 이름을 커다랗게 박았다). 그 유명세 덕을 보았을 것이다. 출간되자마자 대학가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오래지 않아 황석영은 난삽한 기록을 손질해주었을 뿐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실제 저자가 ‘어둠의 자식’임이 알려지면서 책의 인기는 높아만 갔고, 이듬해에는 실제 저자의 이름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이 출간되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배창호 감독은 영화로 만들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어둠의 자식들≫ 이후를 피카레스크 형식으로 기록한 논픽션 같은 소설이다. 서울 동대문 밖 청계천 뚝방을 낀 옛 기동찻길 주변의 판자촌 동네의 특이한 생활풍토와 그 주민들이 등장한다. 소위 ‘막차 탄 인생’들의 절박하고 기이한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꼬방동네는 1970년대에 헐리고 쫓기고 다시 지으면서 만들어진 도시 빈민촌이었다. 당시 사회의 상처이고 치부이며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 이야기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소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우리와 우리 이웃들이 함께했던 삶의 흔적이고,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그래서 더욱더 잊어서는 안 되는 진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문장이나 플롯과 같은 기교와 상관없이 귀에 착착 감기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필자는 초판본을 찾아 다시 읽어보았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런 작품은 제도권 문학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음을 고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나누어야 하는가.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70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분신자살한 이후 ≪다리≫나 ≪대화≫ 같은 진보적인 잡지에서는 어린 노동자들이 쓴 현장체험수기를 실었다.*


그런 과정은 제도권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고, 1978년에는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출간되었다. ≪꼬방동네 사람들≫ 이후에는 이런 소설을 발견하기 어렵다. 최근에 그 맥을 잇는 좋은 작품을 하나 보았는데, ≪웅크린 말들≫(이문영, 2017)이 그것이다. 에세이지만 우리 시대의 ‘난쏘공’이라 해도 좋을 작품이다.**


*김경수의 글, <잊고 싶은 그러나 잊혀서는 안 될>(≪대산문화≫ 2011년 여름호)를 참고했다.

**권성우는 ≪웅크린 말들≫ 추천사에서 이 책을 '우리 시대의 <난쏘공>'이라고 썼다.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논픽션 같은 소설로 읽었다.        


-<동아일보> 2019. 11. 16 <[책의 향기] 누구도 관심 없던 판자촌 사람들의 질박한 삶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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