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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Nov 18. 2019

육개장의 위로

-스핀오프 29

오랜만에 아내가 꿈에 나타났다. 잠들기 전에 아내 얼굴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잠자리에 누우면 언제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래야 잠이 든다. 떠올리고 싶은 얼굴이 희미하면 사진을 찾아본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불을  끄고 눈을 감는다.


아내와 아들 셋이서 어딘지 모르는 곳을 다니고 있었다. 캄보디아였을까? 아내는 암투병을 시작하고 마음을 정했던 것 같다. 아직 약으로 버틸 수 있을 때 가족이 다 함께 앙코르 와트를 다녀오자고 했다. 그 기억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갑자기 아내가 사라졌다. 아들과 함께 한참 찾으러 다녔다. 모퉁이를 돌았더니 아내는 행복한 얼굴로 눈을 감고 춤을 추고 있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준 표정이었다. 딱 한 번 아내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살이란 살은 다 빠져서 뼈만 남은 얼굴로 계면쩍게 웃으며. 

“사랑해요.” 

아마 세상을 떠나기 열흘쯤 전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평생 못한 말을 하고 떠났다. 여장부라 그랬을 것이다. 간지러운 말을 참 못 했다. 아내가 잠든 뒤 병실을 나와 정처 없이 걸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눈물을 그치고서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배고픔이 몰려왔던 것이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배는 고프구나. 아니다. 많이 울어서 배가 고픈 것이겠지. 아내를 돌보려면 나도 좀 먹어야 해.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들어가고 싶은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얼마나 더 걸었는지는 모른다. 육개장을 파는 집이 보였다. 매운 것이니 그럭저럭 먹을 수 있겠지. 들어서니  마감하는 분위기였다.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나?

“끝났어요?”

카운터에 있던 주인이 퍼뜩 대답했다.

“앉으셔요.”

“육개장 주셔요.”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역시 최고의 반찬은 배고픔이다. 냄새를 피우고 기다리게 한 다음 내놓으면 맛이 없을 수 없다. 허겁지겁 먹었던 모양이다. 모자랐다. 밥 한 공기를 더 먹을까 하다가 일어났다. 병실에 아내를 두고 나온 지 얼마가 지났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잠깐 둘러보다가 육개장을 끓이기로 했다. 어젯밤에 마트에 들렀다가 사 둔 재료들이 있었다. 차돌양지를 꺼내 물에 담갔다. 핏물을 빼려고. 물을 안치고 끓을 때 고기를 넣었다. 이십 분쯤 곤다. 그 사이에 마늘을 깠다. 요즘은 깐 마늘을 쓰지 않으니 필요할 때마다 깐다. 이제는 상당히 익숙해져서 금방 필요한 만큼 깔 수 있다. 끓고 있는 냄비에서 거품을 걷어내기도 하며. 마늘 몇 개 넣고 나머지는 모두 다졌다.

대파 한 단을 씻어서 손가락 마디 정도의 길이로 잘랐다. 그때 그 육개장처럼 대파를 많이 넣을 작정이었다. 맑은 소고기 국물이 만들어졌다. 고기는 꺼내 식히고 그 국물에 대파를 넣어 데쳤다. 조금 식은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대파와 함께 볼에 담아 양념해서 무쳤다. 재료에 간이 제대로 배여야 씹는 맛이 좋다. 다진 마늘과 청양 고춧가루, 양념간장, 청주를 넣고 무쳐서 오 분쯤 두었다.

마지막으로, 무친 것들을 곤 국물에 넣고 십 분쯤 끓였다. 국물이 조금 모자란 것 같아서 냉장고에 보관하던 조개 삶은 육수, 표고버섯 삶은 육수를 더했다. 국물 맛이 너무 진해서 생수도 좀 넣었고. 마지막 간은 국간장으로 하고 맛을 보니 아주 좋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때 그 육개장 냄새를 맡고 싶었던 것일까. 냄비 뚜껑을 덮어두고 서재로 왔다.

책상에 앉아 스마트폰을 살폈다.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고요했다. 점점 아내의 그림자가 옅어가고 있다. 얼마 전 스마폰을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려 액정을 깨먹었다. 이번이 두 번째다. 할 수 없이 새것으로 바꿨다. 아내의 사진이 잔뜩 담겨 있던 것이다. 캄보디아의 모습까지. 데이터를 옮기기는 했지만.

쓰던 헤드폰도 쓸 수 없었다. 아내가 사 준 명품이다. 하루 종일 듣고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새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보니 블루투스만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쓰던 것은 유선이다.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바꾸지 못했다. 아마 이 주쯤 지났을 것이다. 헤드폰과 스마트폰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나는 스마트폰에 헤드폰을 연결해서 책을 들었다. 음악 역시. 요리를 할 때나 산책할 때, 외출할 때 언제나 스마트폰에 선을 연결해서 헤드폰을 꼈다. 어쩔 수 없이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바꾸었다. 이제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쓰던 것이 거의 남지 않았다.

오른쪽 이어폰을 살짝 건드려 음악을 켰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처음으로 혼자 여행 갔을 때 내내 듣던 음악이다. 아내가 행복해했던 샌디에이고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곳, 더 이상 아내가 없다는 것을 절감하며 혼자 걷던 제주도 거리의 느낌을 듣는다.


내일 강의 주제는 ‘현대의 가족 문제’다. ≪이상한 정상 가족≫을 펼쳤다. 전에는 주로 ≪모성애의 발명≫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독일 저자의 책이지만 한국 상황을 대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인 저자가 잘 쓴 책이 있으니 그걸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할 거리가 아주 많은 책이라 읽다 말다를 되풀이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보충 자료를 뒤져 보아야 했고.

다큐를 찾아보기도 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모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식사하는 내용이 있었다. 사람들이 인간적인 정을 나누며 서로에게 얼마나 ‘잘’ 이끌리는지 너무나  ‘잘’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헤어져야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 편한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저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 ‘어느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말한다.

“핏줄이 아니어서 좋은 점도 있잖아. 괜한 기대를 안 해서 좋지.”  

말을 뒤집으면 ‘괜한 기대’를 하지 않으면 핏줄인 가족도 애틋한 감정을 키우며 잘 지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고슴도치 같은 존재다. 너무 가까이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낼 만큼 찔러 댄다. 가족이라고 해도.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가 누구든 불가근불가원이어야 한다. 적당한 거리를 지켜야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다.

강의 자료를 다 정리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육개장에 밥을 말아먹으면 된다. 부엌에 가 보니 육개장이 커다란 냄비에 가득 찼다. 사오 인분은 되어 보인다. 이걸 언제 다 먹나......? 식탁에 앉아 한 술 떠먹는데 그게 좀 걱정이다. 누가 좋을까? 파티마가 떠올랐다. 셋 가운데 가장 편한 사람이다. 문자를 보냈다.

‘혹시 육개장도 잘 드시나요?’

‘많이 끓이셨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전에 그러셨잖아요. 음식을 만들면 늘 삼사 인분을 만드신다고.’

‘아, 그랬군요. 대답은요?’

‘좋아해요. ^^’


파티마는 그 다음날 저녁에 왔다.      

“맛있게도 끓이셨네요.”

파티마는 조금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긁어먹었다. 소중한 것이라 작은 알갱이 하나도 버릴 수 없다는 듯.

“배가 고팠어요?”

“아뇨. 맛있었어요.”

기분 좋은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었을 것이다. 그릇을 치우고 더치커피로 카페라테를 타 주었다.

“이것도 맛있어요. ^^”

“집에서 만들어 보셔요. 커피와 우유를 일대 일쩜팔 정도로 해서 섞어요. 그런 다음 큰 숟갈로 백열여덟 번을 휘저어주세요. 맛이 없을 수 없어요. ^^”

“백열여덟 번 젓는 이유가 있나요?”

“글쎄요.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도 많잖아요. 어쩌면 파티마는 백스물여덟 번 젓는 게 더 맛있을지도 모르죠. 저는 백열여덟 번이 맛있지만.”

“아재 개그 같은 건가요. 썰렁해요.”

“하하 글쎄요. 아무튼 한 번 해 보세요.”

“그런데 선생님, 목이 불편하세요?”

뜨끔했다. 혹이 보이나?

“왜요?”

“아까부터 가끔 손으로 목을 만지셔요. 마음이 쓰여서 보니까 조금 이상하기도 해서요. 혹시 뭐가 났나요?”

파티마는 그러면서 다가와서 만져보았다. 필요한 일이라면 거침없이 뭐든 하는 성격인가 보다.

“이거 혹인가요?”

“예.”

“갑상선이면 그리 걱정할 건 없지만 검사는 받아보셔야 해요.”

“아, 경험이 있나요?”

“저도 어린 나이는 아니잖아요. 주변에 갑상선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진 사람도 좀 있었고요. 아주 심하다고 해도 목숨 하고는 관계가 없대요. ^^”

“그렇다고들 하네요.”

“검사는 언제 받으셔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말했다.

한 달 뒤로 잡혔어요.”

“아드님께는 말씀하셨어요?”

“아뇨. 걱정할까 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잖아요.”

“그래서 혼자 가시려고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괜찮겠죠. 무슨 큰일이 있겠어요. 혼자 가나 둘이 가나.”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동행해 드릴게요. 검사하면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병원에 혼자 가면 괜히 서러워요. 없던 우울증이 생길 수도 있고.”

파티마의 질문은 정확하게 맥을 짚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순순히 대답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병원에 동행해 주겠다는 제안에는 대답을 못했다.

“두 시면 제가 여기에 한 시까지 올게요.”

나는 딴소리를 했다.

“바로 옆에 아주 좋은 공원이 있어요. 산책하러 갈래요?”

공원을 들어서면서 깨달았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새 스마트폰에 새 이어폰을 끼고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둘이서 산책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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