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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Dec 14. 2019

파티마의 타이밍

-스핀오프 33

일몰시간을 검색해 보았다. 19시 18분이었다.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삼십 분 뒤에는 나가야지. 강변공원에서 산책하면서 해 질 녘 풍경을 보는 즐거움은 참 크다. 강둑을 따라 선선한 바람도 불어올 것이다. 메신저가 메시지 풍선을 띄웠다. 대개 무음으로 설정해 놓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곧바로 반응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금과 같은 경우가 아니면.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마침 산책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러면 일산 호수 공원에서 뵈어요. 장미정원에 장미가 만발했을 거예요.”

“아, 오래전에 가봤어요. 아내와 함께...... 가보고 싶군요.”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쯤 걸렸다. 팔천 걸음 정도였고. 집 앞에 있는 강변공원보다 조금 더 넓은 정도구나. 아직은 햇살이 강하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나무가 많아 좋았다. 장미정원에는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입구에는 장미의 꽃말이 쓰여 있었는데 뜻밖에도 '정열적인 사랑'이 전부는 아니었다. 특히 노란장미는 무척 아름다운데, 질투나 사랑이 식었다는 표식이었다. 다양한 장미의 이름과 유래를 읽고 있는데 파티마가 물었다.

“저녁 식사하실래요?”

“예, 간단하게 먹을까요? 길 건너에 냉면 집이 있어요. 그럭저럭 먹을 만할 거예요.”

“좋아요.”

나는 온면을 주문했다.

“소화가 잘 안 되어서요.”

“그래서 아까 커피도 마시는 둥 마는 둥하셨군요.”

“예, 대개 일 년에 한 번 소화장애로 고생하는데 올해는 두 번째예요.”

“병원에는 가보셨어요?”

“그렇잖아도 이번에는 가보려고 해요.”

“위내시경 검사 같은 건 안 해 보셨죠.”

“예, 오륙 년 전에 한 번 해보고는.......”

“이번에 한 번 해보셔요.”

“그렇잖아도 그러기로 했습니다.”   

  

파티마는 대개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를 했다. 대충 생각나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다시 책으로≫는 독서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는 점에서 좋은데요, 스크린으로 읽는 텍스트에 대해서는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공감해요. 그 편견은 단편소설을 종이책으로 읽은 학생들과 이북(여기서는 킨들)으로 읽은 학생들의 독해력 차이에 대해 설명할 때 절정에 이르죠. 인문학적 지식, 아니 상식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설득력이 없는 논증이었어요. 그 나이대 학생들이라면 ‘성적 욕망으로 가득한 프랑스 연애소설’을 ‘누구나 좋아하리라’는 전제뿐만이 아니라 독해력을 검증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어떤 형식이든 독단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약점인 책이죠. 뇌과학자의 생각이잖아요. 누구나 모든 걸 다 알고 쓸 수는 없는 것이니 비판적으로 읽어야죠.”

이런 주제로 대화하는 건 언제나 누구하고든 즐겁다. 저절로 몰입된다. 강의하듯 말하는 것 아닐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각자 자기 차를 타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하니 오늘의 용건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전화를 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오늘은 특별한 용건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예, 그냥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기 싫을 만큼 날씨가 좋아서요. 오늘 선생님 덕분에 즐거웠어요.”

“저도 무척 즐거웠어요.”

“그런데 선생님, 통화한 김에 하나 여쭤볼게요.”

“예, 뭐든 말씀하셔요.”

“수면내시경 하실 거죠?”

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예, 그러려고요. 괜한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요즘은 수면마취제로 프로포폴을 쓰잖아요. 부작용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단기적으로는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약이라고 해요.”

“그러면 병원에 아드님이나 누가 따라가셔요? 수면내시경을 하고 나면 아무래도 운전은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요.”

그냥 혼자 다녀올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병원 간호사가 한 숨 자고 가면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면서. 파티마는 알겠다고 했다.      


아마 이틀쯤 지났을 것이다. 파티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혹시 괜찮으면 자기가 병원에 동행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잠깐 생각해 보다가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 삼십 분 전까지 모시러 갈게요.’ 다시 ‘고맙다’고 했다.

서재 창밖에서는 아름다운 보라색 노을도 다 사위어가고 있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집안은 고요했고 어둠이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불을 켜니 낮은 책장 위에 올려져 있는 아내 캐리커처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옆의 내 사진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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