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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Dec 21. 2019

데이지의 타이밍

-스핀오프 35

“다음 주 수요일은 어떠세요?”

나는 수요일을 쉬는 날로 정했다. 강의나 '일과 관련된 만남'은 다른 요일로 잡는다. 데이지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날은 집에서 게으르게 지낸다는 걸.

“아, 좋습니다.”

 

상수역 근처에 있는 인도음식점에서 만났다. 식당 이름은 축제라는 뜻의 인도어라고 했는데 잊었다. 데이지에게는 익숙한 장소 같았다.

“작가님, 탄두리 구이하고 갈릭 난을 먼저 드셔 보셔요. 그러고 나서 모자라면 커리에 밥이나 면을 좀 시키고요.”

그날따라 데이지는 구름 위를 걷는 사람처럼 보였다. 중국에서 지내며 겪은 이야기를 했다. 주로 회사 일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잘 모르는 분야라 조용히 들었다. 용어나 맥락에 대해 가끔 질문하면서. 그게 좋았던 것 같다. 기쁜 얼굴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자리가 편했다.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도 괜찮았다. 그런 내 모습이 낯설었지만. 데이지를 오랜만에 보는데도 익숙한 느낌이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사람에게 익숙해지는데 세월이 많이 걸린다. 데이지를 안 지는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주 본 건 아니었고, 아무 용건 없이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데이지가 마음먹고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거라면 대단한 일이다. 식당이 마음에 들었고, 음식도 좋았다. 맥주를 마셔 보았는데 맛있다. 이건 무척 좋은 징조다. 맛있는 맥주는 아주 드물다. 낯선데도 편했고 데이지는 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전에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커리하고 밥을 좀 드실래요?”

“아닙니다. 배가 불러요. 제가 보기보다 적게 먹습니다.”

“세상에, 누가 그러던가요? 제가 보기에는 늘 아주 적당하셨어요. 그게 참 좋아 보였는데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보기하고 다르게 적게 먹는다, 보기 하고 다르게 자상하다, 보기 하고 다르게 편안하다. 참 나.. 그럼 내가 보기에는 어떻다는 말인지.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데이지도 저에게 보기 하고 달리 어떻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호호 그랬나요? 그럼 작가님은 보기 하고 다른 게 맞나 봐요. 보기 하고 다르게 편하고 부드러우셔요.”

“제가 무섭게 생겼나요?”

“좀 그렇죠.”

데이지는 거침없이 말했다. 잠깐 데이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마 누구나 그럴걸요. 나는 변명처럼 말했다.

“아마 생각이 많아서 그래 보일 겁니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는 인상을 쓰고 뭔가를 노려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화난 사람처럼. 오래 전에 아내가 그랬어요.”

“예에......”

갑자기 조금 가라앉았다.

“데이지도 어려운 사람 같아요. 남자들이 쉽게 말을 걸지 못하지 않나요?”

“그래요. 저는 그게 좋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제가 말을 걸면 되니까요.”

“그렇죠. 근데 저도 누가 귀찮게 하는 건 싫은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말을 걸진 못해요. 그래서 아쉬울 때가 있는데.”     


데이지는 실내정원을 보며 앉아 있다가 내 쪽으로 돌려 앉아서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하셔요?”

“저에게는 조금 묘한 작가예요. 조금도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도 작품을 하나씩 읽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조금씩 좋아졌어요.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두꺼운 세 권짜리 소설, ≪1Q84≫는 나오자마자 구해서 밤을 새워 읽었어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도 들어 보셨어요?”

“그럼요. 소설을 펼치자마자 그 음악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 곡을 들으며 읽었어요. 그 소설이 재미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였을 거예요. 제가 보기와 달리 음악과 스릴러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여주인공이 킬러잖아요. 남자 주인공은 작가예요.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작가가 되지 않았지만. 그 작가는 당대 최고의 편집자와 함께 등장해요. 저로서는 아주 익숙하면서도 낯선 설정이죠. 매혹적이기도 했고요. 시작부터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죠.”

“이제야 물을 만난 것처럼 살아나시네요. 재미있어요.”

“아, 그랬나요? 아까는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라 그랬겠죠.”

“혹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거 아세요?”

데이지는 책을 한 권 꺼내서 갈피를 잡아 펼치고 잠깐 들여다보더니 책을 덮고 탁자 위에 놓았다. ≪작가란 무엇인가≫였다. ‘파리리뷰’라는 잡지에 실렸던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모아 엮은 책이다.  

“무라카미를 인터뷰하는 장면이에요. 질문자가 이렇게 말해요. 당신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여성에 대해 수동적이고 여성들이 먼저 다가갑니다. 그 여성이 남자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판타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문을 열어주는 것 같고요. 무라키미는 그렇다고 답해요. 내 소설에서 여성들은 매개자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을 어디론가 인도하고 중요한 무엇인가를 보게 해 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은 새롭게 펼쳐질 사건의 전조라고 볼 수 있어요. 당연히 여성이 먼저 남자에게 다가가야 하는 거죠. 운명 같은 것이니까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로군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뭘요?”

“무라카미가 옳다면, 뭐 소설에서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소설을 그렇게 쓴다는 건 무라카미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일 테니까요. 어쨌든, 언제나 남자는 여자의 안내를 받을 때 비로소 무엇인가를 보기 시작한다는 것 말이에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참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담고 살았다. 십 년 정도는 더 그랬을 것이다. 삶에 대한 애정이 없었으니 좋아하는 책 속에만 파묻혀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등장해서 나를 끌어내었다. 감동적인 사람이었고, 그 감동에 이끌려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삶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나는 새로운 삶에 너무나 서툴렀다. 잘해 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최선을 다하려고 지독하게도 애쓴 세월이었다. 삼십오 년이 지나고 익숙해질 만하자 끝이 났다. 이제 다시 책에 파묻혀 살고 있다. 아내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삼 년의 기록이 어쩌다가 책으로 출간되고 사람들은 그 창문에 비친 나를 보고 있다. 그 독자들이 이 글을 본다면 보기와 다르다고 느낄지 모른다.  

데이지가 말한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가고 있었다. 수많은 장면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참 이상했다. 지난날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갑자기 몰려드는 것 같다. 요즘은 그렇다.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이 점점 더 힘들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해야 할 말을 잡아내지 못했다.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런 것 같군요.”


데이지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앉아 실내의 연못을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짧은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웨이터가 와서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된다고 알려주었다. 음식점을 나서면서 데이지가 말했다.

“작가님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실래요?”

데이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뭘 말인가요?

“제가 일하는 충칭에 한 번 다녀가 주셔요. 다음 달에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떠올랐다. 중경삼림. 지금도 가끔 우울하면 거실에 틀어둔다. 물론 그 영화 배경은 홍콩이지만. 가보고 싶었다. 데이지가 있는 곳이라 그런 게 아니라.

“그럴게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속에서도 여운처럼 남아 있는 데이지의 웃음과 목소리가 들렸다.

“연락드릴 테니까 약속 지키셔야 해요.”

나는 중경삼림에서 왕페이를 처음 보았다. 여배우를 좋아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임청하와 앤젤리나 졸리는 좋아했다. 두 사람을 유일하다는 건 형용모순 아니냐고?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임청하와 졸리가 같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좋아하는 배우가 정말로 유일해졌다. 왕페이로 바뀐 것이다. 그러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다시 왕페이가 떠오르고 캘리포니아 드리밍의 리듬이 되살아나려 한다.


집에 도착해서 ≪작가란 무엇인가≫를 검색해 보았다. 요즘은 웬만하면 이북eBook이 있다. 미리보기를 좀 읽어 보았다. 움베르토 에코에서 시작한다. 인터뷰 내용이 아주 좋았다. 결제하고 내려받아 무라카미 하루키 부분을 폈다. 데이지는 인터뷰 내용 일부를 아주 잘 요약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중요한 내용 하나를 빠뜨렸지만. 쑥스러웠을까? 거의 오십대에 이른 나이인데도. 다시 <코민스키 메소드> 한 장면이 떠오른다(등장인물들은 육칠십대다). 거기에서도 섹스를 주도하는 사람은 여자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보고서도 그럴 이유가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다음은 데이지가 빠트린 부분이다.


섹스는 영혼을 헌신하는 행위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섹스가 훌륭하면 상처가 치유되고 상상력이 활력을 얻지요. 이는 더 높은 영역으로, 더 좋은 곳으로 향하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얘기 속에서 여성들은 매개자, 즉 다가올 세계에 대한 전조 역할을 하지요.


대개 사랑하는 관계가 시작되기 전에는, 나는 아주 심하게 그 문을 여는 게 어려운데, 시작되기 전에는 나는 섹스에 아예 관심도 없고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인 줄 안다. 일부분은 진실이다. 그런 관심으로 곁에 들렀다가 떠났다고 짐작되는 사람도 있다. 성격이 밝은 사람은 말한다. 언니 같은 우리 선생님. 데이지도 나에게서 그런 걸 느꼈던 것일까?

그나저나 요즘 같으면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해 본 게 언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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