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en's day
오키나와 나하에서의 2일 차 아침.
어제 해가 지기 전부터 맥주와 하이볼로 기분을 잔뜩 낸 우리는 평소보다 1시간 더 잤다.
'안 취했어, 무리하지 않았어'라고 자신을 속여봐도
기상시간이 달라지는 건 평소보다는 조금 텐션이 떨어졌다는 증거일 테다.
기상시간이야 어떻든 각자의 루틴대로 오전시간을 보낸 뒤 숙소를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슈리성과 현립박물관 그리고 쇼핑이다.
출발 전 규동세트로 가성비 있게 아침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으면서 속이 이상했다.
배가 슬슬 아파오며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게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고기 비린 냄새 때문인가 싶어 코로 숨을 쉬지 않고 최대한 야채 위주로 먹었다.
속이 안 좋다고 하면 덕이가 걱정할 것 같으면서도
왜 음식을 남기냐고 하면 '뭐라고 하지..?' 고민했는데 덕이는 별 관심 없는 듯 불어보진 않았다.
(다행인가 싶기도..)
슈리성까지 걸어가긴 멀어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기다리면서 슬슬 몸에 신호가 왔다.
'아 오늘 생리통 세겠는데..?'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그날에는 항상 긴장을 한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도 심한 생리통에 하던 일을 멈추고 울며 집으로 돌아간 적이 허다하다.
37년을 살아도 적응 안 되는 이벤트이지만 이젠 제법 통증의 정도를 가늠할 줄은 알게 되었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통증 따위야 하며 나 자신을 속이는데 오늘은 속아지지 않는다.
슈리성을 돌아보며 고통이 절정에 이르렀다.
오늘을 복통을 넘어서 허리통증까지 속에서 누가 쥐어뜯는 고통이었다.
근 몇 달간 순간만 지나면 괜찮았는데 오늘은 심상치 않았다.
이제 14년 차에 접어든 덕이는 척하면 척이 되어 이 순간의 아픔이 어떨지 감으로 예상하며
옆에서 손을 내어주고 모든 계획을 취소한 채 묵묵히 집으로 안내해준다.
평소보다도 느린 걸음이 답답할 텐데도, 어쩔 줄 모르는 공기의 흐름이 숨 막힐 텐데도
최대한 내가 편안해질 수 있게 맞춰준다,
당시엔 내 아픔만 느끼느라 그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는데
고작 1-2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나는 오늘도 배려가 가득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마저 사랑으로 연결되다니.. 진정한 사랑꾼이다.)
아 그리고 덕분에 박물관은 못 갔지만 행운의 여신은 역시 나의 편이었는지
오늘 박물관은 휴무라고 한다.
럭키잖아? 아니 그래도 한 달마다 찾아오는 이 날은 노럭키..
오랜만에 도시로 나와 슈리성을 구경 가기로 했다.
자세한 일정은 없이 큼지막한 일정만 정하고 숙소를 나선다,
J로서 시간까지 정해진 계획을 했었으나 상대의 동의가 없다면 내 계획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 답게 지도는 자세하고 정확하게 나와있었고 순조롭게 이동을 했다.
같은 일본이어도 지역마다 회사마다 사용되는 카드가 다르며
버스 타고 내리는 게 달라도 入口 , 出口 만 읽을 수 있다면, 현금이 있다면 어디서나 다 이용할 수 있다.
슈리성에서 유료구간의 티켓을 끊고 들어갔는데
웬걸,, 성이 화재를 입었단다.
'이걸 보러 온 건데..? 그럼 입장료는 왜 받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은 복원공사 중이었는데 그 과정을 하나의 스토리로 전시해 놓았다.
실제 복원 공사 중인 내부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 놨다.
이런 아이디어를 내었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성을 보러 온 내 목적이 불발되었기 때문이다.
'하필 그날이라니'
입장료를 400엔씩 800엔을 냈기에 하나하나 다 돌아보기로 했다.
구경에 집중하며 이동하는데 짝꿍의 행동이 느려졌다.
처음에는 더 자세히 구경하려는 줄 알았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느렸다.
그래서 조금 빨리 가자고 이야기를 하는 찰나 '나 배가 아파 그날이야'라고 짝꿍이 조용히 말했다.
생리통이 심한 짝꿍은 여러 나라에서 중간에 숙소로 돌아간 적이 많다.
이런 상황이 여기서 발생하다니.. 상황에 빠르게 해결책을 내놓고 해결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다.
내 마음보다 짝꿍의 마음은 더 불편했을 거다.
성에서 숙소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생리통약을 사서 들어갔다. (EVE가 좋다더라 / 한국보다 저렴)
걸어서 11분 거리는 20분 이상이 걸렸고 가는 길 중간에 앉아서 쉬기도 했다.
짝꿍은 미리 약을 먹었는데도 아프다고 했다.
(그래.. 준비성 철저한 네가 어련히 알아서 다 했겠지.. 이런 상황이라 속상하겠다.)
여행은 순식간에 숙소로 마무리되었다.
'하필 그날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