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투닥거리기도 하겠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같이 산지는 고작 6년.
32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는 본인을 최선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니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습관이나 행동 생각들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알면서도 나는 아직도 매번, 자주 잊는다. 그리고 툴툴거린다.
나는 표현을 하는 스타일이고 남편은 묻어두는 스타일이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표현하면 덕이는 그 표현을 먹고 입을 닫는다.
그러다 보면 우리 사이의 공기는 냉랭해지고 머리 위에는 먹구름이 둥둥 떠다닌다.
연애 초반 몇 년은 왜 불편한 감정에 대해 말을 안 하냐며 붙들고 늘어졌고 그럴수록 덕이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조금 전 우리는 사소한 일 하나로 공기가 무거워졌다.
7년을 연애하며 우리는 단 한 번도 헤어진 적은 없지만
여느 20대의 연인들과 다름없이 투닥거리는 연속의 끝에서 연락을 안 한 적이 있다.
무려 3주 동안.
그때의 나는 오기였고
덕이는 정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3주 동안 남자친구가 연락을 안 해?' 서운함이 폭발하다 못해 모든 일에 집중이 안될 때
내가 먼저 연락을 했고 우리는 집 앞 빵집에서 만났다.
덕이는 아직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나는 그럴 거면 '우리 헤어져'라는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저 곧고 곧은 심지의 나무가 부러질만한 무기가 아니었고
'그럼 헤어지자'로 정리가 되었다. 마음이 쓰리고 콩닥거리며 '정말 헤어지는 건가' 반신반의하면서도
겉으로는 쿨하게 나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헤어져'라고 했으면 '미안해 잘해보자'가 나왔거나
이쯤에서 날 잡으러 와야 하는데
뒤돌아보니 그는 온데간데 없어졌고 난 진짜 헤어진 사람이 되었다.
펑펑 울며 전화를 했다. 날 데리러 오라고.
덕이는 전화는 받는 친절함을 보여줬지만 데리러는 오지 않는 매정함도 보여줬다.
그리고는 '네가 와'라고 했다.
아마 덕이는 이미 미래를 예상하고 진작부터 나의 못된 성격을 받아주지 않았던 게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약 오르지만 처방이 끝내주는 약이었던 건 확실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무리 섭섭해도 다시는 '헤어져'라는 무기를 들지 않았으며,
마음에 없는 소리로 오기를 부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덕이의 생각이 무엇이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물론 아직 힘들 때도 많다)
평생 서로를 알아가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싶으면 끝나버리는 게 인생일 텐데
뭘 그렇게 잘 알겠다고, 잘 맞아가겠다고 애쓰는 걸까.
생각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우리의 2박짜리 캠핑도
예정에 없던 거센 바람도
못마땅한 상황에 잠시 뗀뗀해진 우리 분위기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텐데
굳이 굳이 애쓰며 지금 당장 해결하지 말자.
서로에게 주어진 시계로 그냥 바람 한 점 더 맞으면서 흔들리는 텐트소리를 눈 감고 들어보자.
그럼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테니까.
매일 잘하려고 애쓰다가도 이런 날이 생기면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해 보자.
찬물에 샤워를 못하겠다면 먼저 운동을 해서 몸에 열을 나게 해 보자. 그럼 시원하게 느껴질 테니까.
어젯밤 12시간을 잤어도 멍하다면 그냥 눈감고 누워보자. 낮에 잠든다 해도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다.
그냥 가끔은 이렇게 애쓰지 말자.
어차피 10분 뒤엔 아무 일도 없던 듯 서로 웃을 거라는 걸 아니까.
사랑은 신뢰, 애틋함 등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상대방을 위해 조건 없이 사용한다.
하지만 그게 과해지거나 다른 방향으로 사용되면 때때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랑이 너무 과하면 의존적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방식과 에너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도 있다.
우리는 남들이 볼 때 거의 안 싸우고 사이좋게 지내는 몇 안 되는 부부이고
실제로도 그런 편이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려 하고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한다는 것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계획을 막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번 해보고 안되었을 때 계획을 변경해 목표를 이루는 것이면 몰라도 기분에 따라 계획을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짝꿍을 바꾸기보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세부계획들을 변경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 변경의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동안의 표정과 분위기를 짝꿍은 불편해한다.
이 시간이 짧아지고 강도가 약해져도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영상촬영, 짝꿍과의 시간을 보내는 게 목적이고 내가 생각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별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집중하는 나의 모습을 바꾸고 싶지도 않다. 그저 같이 다시 계획을 세우면 될 일이다.
(그래도 생각의 전환과 대화하는 법은 의식적으로 더 연습해야 할 것 같다.)
계획이 갑자기 변경되고 짝꿍이 내 분위기를 불편해할 때 우리는 어색해진다.
이럴 땐 억지로 분위기와 생각을 바꾸기보다 각자 시간으로 생각, 활동, 휴식을 가지면 어떨까?
우리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 각자의 할 일을 한다. (특히 내가 그렇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대화를 통해 불편했던 부분을 해결한다.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너무 바로 풀려고 애쓰지 말고 시간을 주자.
무의식에 맡기거나 조금 멀리서 볼 수 있도록 몸을 쓰는 것도 방법이다.
술을 마시거나 제삼자에게 가서 험담을 하는 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아도 자신을 갉아먹는 행동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대를 바꾸려고 애쓰지 말자.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애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