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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그림 Oct 04. 2022

《환단고기》암호 해독을 위한 열쇠①, 부계vs모계 코드

성씨의 변천 및 부계 사회로의 혁명

1. 성씨의 변천


인류는 모계 사회로 시작하였다.

성씨라는 한자에 이 모계 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성(姓)이라는 한자에 ‘계집 녀(女) 변’이 있는 것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원래 성은 모계를 뜻하고 씨는 부계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러던 것이 부계 사회로 전환되면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모계의 의미는 사라졌다.

그러면서 성씨 전체가 부계의 의미만 남고 결국엔 부계인 성을 이어받으며 씨는 분봉 받은 지역이나 직업을 나타내는 것으로 의미가 변한다.

결국에는 성씨의 구분이 없어지고 성이나 씨 중 하나로 정리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 과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1단계 : 모계를 뜻하는 성, 부계를 뜻하는 씨

② 2단계 : 부계를 뜻하는 성, 분봉 된 지역이나 직업을 뜻하는 씨

③ 3단계 : 성씨의 구분이 없어지고 성이나 씨 중 하나만 사용


지금의 관행과는 아주 달라서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어서 예를 하나 들도록 하겠다.


주무왕을 도와 주나라가 상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게 해준 것으로 유명한 강태공이 있다.

강태공은 성이 강(姜)이라 강태공으로 불렸다.

그런데 조상이 분봉 받은 봉국이 여(呂)이다.

봉국 이름은 상(尙)이다.

그래서 다르게 불리는 이름이 ‘태공망(太公望) 여상’이다.

태공망이란 강태공을 처음 등용한 주무왕의 할아버지인 태공 사계력의 생전에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뛰어난 인재라는 뜻이다. 

주무왕이 할아버지 때부터 3대를 힘써온 대업을 이룬 후 강태공을 제나라 후에 봉한다.

따라서 이후 강태공의 후손들은 강성에 여와 제의 씨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강태공의 후손으로 춘추오패의 첫 패자로 등극하게 되는 제환공의 경우 성은 강, 씨는 여·제, 휘는 소백, 시호는 환공이 된다.


강태공과 제환공




2. 부계 사회로의 혁명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의 전환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졌을까?

이러한 일단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중국의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줬는데, 순임금은 요임금의 아들이 아니라 사위이다.

이어서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줬는데, 우임금도 순임금의 사위이다.


이런 승계 방식은 모계 사회의 제도다.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면 대대로 딸로 인해 왕계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부계 사회로 확고하게 전환된 이후에 사실은 여왕이었던 것이 사위가 왕이었던 것으로 역사 기록을 바꿔놓았을 수도 있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서 최초의 부계 승계가 이루어진 것은 이 우임금의 아들인 사계이다.

사계 이후에는 계속 부계 승계가 이루어져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 왕조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우임금도 자기 아들 사계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애초엔 사위인 백익에게 왕위를 물려 줬다.

그러다가 사계가 백익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이것은 부계 사회로 혁명 되는 것에는 만만찮은 진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흥미롭게도 사계 이전에 이미 순임금이 부계 사회로의 혁명을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1987년에 출간되었다가 중국 당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낙빈기의 《금문신고》에 나오는 내용이다.

《금문신고》는 중국 고대 청동기 등에 새겨진 최초의 문자, 즉 고대 금문을 해독하여 중국이 신화의 시대로 간주하고 있는 삼황오제 시대를 역사의 시대로 증명한 책이다.


낙빈기 《금문신고》


아무튼, 이 전설은 순임금이 아들인 우상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딸인 사모신과 사위인 우(사공우)가 반기를 들어 순임금이 도망가다가 창오에서 살해당하고 순임금의 두 부인이자 요임금의 두 딸인 아황과 여영은 소상강에 투신하였다는 것이다.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순임금은 부계 사회로의 혁명가로서 스스로 희생됨으로써 부계 사회로의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우임금은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 눈치가 보여 사위인 백익에게 왕위를 물려줬고 우임금의 아들 사계가 나서서 부계 승계를 완성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런 순임금(우중화)도 자기 아들인 단주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요임금을 핍박한 결과 요임금과 아들 단주는 도망가서 27년 동안 숨어 살았다는 기록이 《산해경》, 《사기정의》, 《상서》, 《죽서기년》 등에 나오고 있으니 부계 사회로의 혁명은 대단한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는 사건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중 《죽서기년(竹書紀年)》은 서진 시대인 279년 현재의 하남성에서 위나라 양왕의 무덤이 도굴되었을 때 나온 죽간을 옮겨 정리한 것으로 전국시대에 지어진 내용이라 앞서 《금문신고》와 동일하게 사마천 등 한나라 때 유가들에 의해 왜곡되기 전 역사 기록으로 특히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죽서기년》


이러한 사례에서 모계 승계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계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세 : 요임금의 부인

2세 : 아황·여영

3세 : 사모신

4세 : 백익의 부인


이들은 사실은 여왕일 가능성이 있고, 이 여왕들의 이름은 사서에서 철저히 가려져 있는 것일 수 있다.

다만, 아황·여영은 전설로 남아 알려지게 되었고, 사모신은 고대 중국의 금문을 분석한 낙빈기의 《금문신고》에 의해 알 수 있었다.


이 여왕들은 앞서 성씨 변천 1단계가 중국 기록에 남은 마지막 사례이다.

그리고 우임금의 하왕조는 BCE 2070년이므로 중국은 앞서 성씨 변천의 2단계가 이때부터 본격화된다.


즉, 부계 사회로 혁명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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