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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Aug 27. 2019

06 본 적 없지만 익숙한 당신

라디오는 매일매일 정확한 시간에 찾아온다. 마치 약속을 한 듯. 그래서 프로그램(정확히는 진행자)에 친근함을 느끼는 청취자들이 많다. 친숙함이야 말로 라디오가 가진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프로그램을 오래 하다 보면 제작진도 익숙한 청취자가 생긴다. 나에게도 세명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주기적이며 본인만의 시그니처 레퍼토리가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청취자는 '새벽부터 심야까지'
전화를 해서는 우리 방송사의 모든 프로그램 진행자의 안부를 묻고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새벽 프로부터 심야프로 담당 피디들의 근황을 순차적으로 묻는다. 마지막에는 전화받는 사람이 OOO(내 이름) 작가님이 맞냐고 확인한 후 전화를 끊는다. 바쁘지 않은 이상은 대답을 하는 편이다. 장난친다는 악의보다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 전화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두 번째 청취자는 'ㅇㅈㄷ에 사는 ㅈㅅㄴ씨'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자신의 신원을 밝힌 후 태어나 들어본 적도 없는 가수의 노래를 아냐고 물어본다. 포털사이트에서도 찾기 힘든 가수들. 더러 청취자인 척 자기 가수의 노래를 신청곡으로 틀어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매니저도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인가수 매니저인가 했다. 2년을 지켜본 결과 그건 아닌 듯하다. 그냥 자신이 좋아서 전화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분의 마지막 시그니처 멘트  '■■■■(타 방송) 들어보세요. 좋은 노래 많이 나옵니다'


마지막 청취자는 일명 '055 씨'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나이대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전화를 받으면 바로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발신번호가 뜬다는 걸 모르는 듯한데 가끔은 전화를 걸어서 무슨 일인지, 왜 굳이 다른 지역에 계신 분이 우리 방송에 전화를 하는지 묻고 싶다. 한 번은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이 있다. 꽤 길게 울리다 끊겼는데 바로 다시 전화가 왔고 받으니 역시 끊어버렸다. 




오늘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근 한 달째 055 씨로부터 전화가 없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 없지만 갑자기 연락이 끊기니 문득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다.

라디오 청취자만 익숙해지는 게 아니다. 제작하는 사람도 이렇게 청취자에게 익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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