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의 기억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긋지긋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람 등등, 한국의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이 싫었던 나는 배낭하나를 매고 신나고도 가볍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천공항을 떠났다.
벌써 15년 전 일이다.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며 받은 퇴직금을 몽땅 가지고서 1년 반 동안 세계 곳곳을 떠돌았다.
돈이 다 떨어질 때쯤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내 마음은 언제든 다시 한국을 떠날 핑계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입사하게 된 한국의 비영리 재단에서 기업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사업 기획, 운영 일을 하게 되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국내외의 대기업(메르세데스 벤*, 삼*전자, 하이닉*, 한*)과 파트너로 일하며 그 기업들의 본사를 들락거려 가며 3년 정도의 시간을 한국이라는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사는가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다시 떠날 핑곗거리를 찾았고, 국제개발 활동가라는 멋들어진 명함을 달고서 아프리카 말라위로 파견을 떠나게 된다. 파견 기간이 끝나고서도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전 세계 어디라도 좋다. 아프리카 오지라도 좋으니 한국만 아니면 된다 싶었다.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에서 커피 사업을 시작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8년간 케냐에 살며 사업을 키우고, 아이도 낳아 키웠다.
그 아이가 이제 8살이 되었다.
15년. 강산이 한번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한국은 경제,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더욱 개방적이고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로 변화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쭉 살아왔던 사람들은 아마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객관적으로 정말로 그렇다.
2024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었던 걸까?
15년이 지나 나는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진 걸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통영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시간들을 찬찬히 되돌아보니 아무래도 나는 한국이 싫어 한국을 떠난게 아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사는 내가 싫었던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