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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n wonderland Aug 26. 2022

잘 말하지 않는 나

solo leveling_6 내면의 아이와 만나다. 

높은 방파제가 쌓여있는 바닷가 마을.

유치원생? 초등학생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뭔가 짓궂은 장난을 꾸미며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아이들이 또래의 여자아이를 번쩍 들어 높은 방파제 너머 바닷물에 풍덩 빠트리고는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간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큰일이다.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다. 

그 여자아이는 어쩌면 물에 빠져서 죽었는지도 모른다. 

잔뜩 겁에 질린 남자아이는 미처 그 여자아이의 안전을 확인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구 달려 어둡고 비좁은,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할 것 같은 공간 속으로 숨어든다. 

고개를 파묻고 바들바들 떠는 아이. 

'그 여자애가 죽은 것 같아. 죽었을지도 몰라. 죽었으면 어떻게 하지?'

그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무릎을 끓어앉고는 한참을 어둠 속에 혼자 앉아 바들바들 떨며 울었다. 


'외롭다. 무섭다. 두렵다. 불안하다.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해선 안된다.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다'  




명상 중에 이런 장면이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남자아이였고, 어릴 적 나는 바닷가에서 산 적도 없을뿐더러 그런 짓궂은 장난을 할 성격도 아니었으니 그것은 분명 내 과거가 아니다. 

그럼에도 내 머릿속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생생한 장면이 불쑥 떠올랐고, 두렵고 외롭고 무서운 그 아이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져 실제로 한참 동안 그 감정에 빠져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는 그 아이의 감정과 하나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그 아이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아이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며 떨고 있고 그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이를 지켜보는 나도 그 아이를 안아주거나 위로해 주지 않은 채 냥 멀찍이 떨어져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둘인 듯 하나인 듯 거리를 두고 그곳에 존재했다. 


눈을 뜨고 현실세계로 돌아와서도 그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아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녀들: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로 인한 자아(내면 아이. inner child)가 있다고 해요.(1990년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상담사 존 브래드쇼(John Bradshaw)가 저서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린 상담기법, 출처 : 이코노믹리뷰(https://www.econovill.com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았어야 했던 따뜻한 보호와 보살핌이 결핍되거나 어린 시절의 잘못된 정보나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상처 때문에 생기며 이 아이는 무의식에 숨어 있다가 상처를 입을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의식 밖으로 튀어나와요. 그리고 미성숙한 방식으로 대응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불행을 자초하죠.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고, 도망가고 싶고,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을 면밀하게 살펴볼 때 내면 아이를 발견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아요. 상대방이 한 말, 상대가 나에게 보인 행동, 당시의 상황 등에 골몰하느라 남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속마음이 나를 공격하고,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나를 속이고 있다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아요. 


햇살:  내면 아이라면 저의 과거가 떠올라야 할 텐데, 왜 남자아이가, 그리고 가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 생소한 이야기가 떠올랐던 걸까요? 그러면서 나는 왜 그 아이에게 그렇게 감정 이입이 되었던 걸까요? 


그녀들 :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대부분의 과거가 실제로는 왜곡되거나 주관적으로 해석된 것이어서 사실이 아닌 경우가 아주 많거든요. 사람들이 기억하는 과거는 아주 주관적이고 단편적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햇살님이 느꼈던 감정느낌이에요. 

그 아이가 어때 보였나요? 


햇살 :  그 아이는 자존심도 고집도 아주 센 아이였어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직면하기보다는 도망쳐 버리고 싶어 하는 아이.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도움을 받고 싶어 하지도 않으면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 


그녀들 : 그 아이를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햇살: 사실.. 안타깝기도 했지만 미운 마음이 더 컸어요. 연약해 보이고 불쌍해 보이면서도 왜 저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하나 싶어서 못마땅한 마음이 들었어요. 저 스스로 잔인하다고 느낄 만큼 안아주고 싶지도 위로해주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녀들 : 그  불쌍한 아이,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그 아이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또 그 아이를 외면하고 미워하고 사랑을 주지도 않고 멀찍이 떨어져 보고만 있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햇살: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아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입을 꾹 다물고 버티고 있었어요. 그건 정말 제가 싫어하고 못마땅해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해요. 전 도움을 요청하는 것, 내 잘못을 고백하는 것을 정말 잘 못해요. 그런 상황이 되면 그냥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안 해요. 

상황을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가 내가 싫어하는 그 행동을 하는 걸 보고 있으니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어요.


그녀들: 햇살님은 자신이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게 될 비난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부탁하고 요청했을 때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큰 것 같네요. 그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자기 자신은 어떻게든 완벽해지려고 애를 쓰고, 또 완벽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상대방을 통제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으니 인생이 정말 피곤하겠어요.  완벽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혼자 완벽하려고 온 몸에 힘을 잔뜩 주고 긴장을 있는 대로 하며 살고 있는 거지요.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그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누구나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어요. 그러면 솔직히 이야기하고 사과하고 책임을 지면 되는 거예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셔야 해요. 표현하지 않고 가슴속에만 묻어둔 생각은 무거운 에너지가 되어 내 안에 쌓이고 쌓여 언젠가 폭발하게 된답니다. 


햇살: 맞아요. 거절에 대한 두려움,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저는 솔직하게 가볍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이것도 일종의 교만인 것 같아요. 


그녀들:  그 아이는 햇살님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에요. 또 그런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미워하는 사람 또한 햇살님이고요. 


햇살 : 그렇다면 내가 여전히 나 자신을 많이 미워하고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거네요.  맞아요. 그래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못마땅하고 부족해 보이고 그래서 화가 나고 미울 때가 많았어요. 

이런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연약하고 어려서 보호받고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할 내 안의 나를 나는 끊임없이 외면하고 미워하고 있었나 봐요.  난 그 아이를 끝내 안아주지 않았어요. 다가가서 괜찮냐고 물어보고 안심시켜주고 말을 걸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마음도 있었는데 자존심 때문인지 뭔지 끝내 그러지 않았어요. 그냥 혼자 뒀어요. 

  

그녀들: 지금이 햇살님이 회피하고 외면했던 내면의 아이를 치유해야 할 가장 최적의 시기인 것 같네요. 내 안에서 억압되고 단절되어 왔던 내면 아이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조금씩 느껴주면서 한 나씩 공감하고 풀어주세요. 수십 년간 나에게 공감도 위로도 받지 못하고 비난받고 혼나기만 했던 내면 아이는 혼자서 외로워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거예요. 내면 아이를 만나 그 모든 감정을 허용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안아주세요. 그러다 보면 무의식에 있어 알아차리지 못했던 불편한 감정들이 하나씩 해소되면서 지금까지 해소되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해결될 거예요. 


햇살: 내가 내 안의 상처들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고 나 자신을 비난하고 미워하며 참 바보같이 살고 있었네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주고 안아줘야겠어요. 아주 오랫동안 꼭 안아주고 "괜찮아. 다 괜찮아"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그녀들:  도움이 필요하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가볍게 도움을 요청하는 연습을 해 보세요. 

너무 고민하지 말고, 가볍게 요청하고 가볍게 부탁하고 상대방이 거절하더라도 가볍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더 자주 내면의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고, 안심시켜주세요.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랍니다. 




% 현재 나의 상태 

용기 30% : 두려움 없이 나를 더 알아보겠어. 더 깊이 만나보겠어. 

자발성 30% : 드디어 내면의 아이를 만나게 되었어. 뭔가 변화가 시작되는 느낌이야.

기쁨과 감사 20% :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난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야. 너무나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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