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함께 하는 작가 자의식 생성기
"아마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소설을 쓰려고 할 때, 말을 바꾸면 '나 자신을 혁신하게 될 가능성을 가진 종합적인 스토리'의 시동을 걸려고 할 때, 나는 자유롭게 아무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45p)
나 자신을 혁신하게 될 가능성을 가진 종합적인 스토리라. 난 글을 쓰며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없다. '내일'과 '흡연우정'을 쓰면서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 웹소설들을 쓰면서는 못 느꼈지만. '흡연우정'은 정말 쓰면서 실시간으로 내가 바뀌었다. 아무래도 가장 최근의 기억들로 썼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날 인물에 투영해서 그런 것 같다. 정말 하고 싶은 말, 묘사하고 싶은 감정 다 퍼부었다.
하지만 먼저 기대하면서 이야기를 쓴 적은 없다. 소설이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니.
12. 글은 작가를 어떻게 바꿀까?
네가 뭔데 나를 바꿔. 네가 뭔데 나를 바꾸냐고. (땡깡을 부려보았다.)
무생물체에게 이렇게 찡얼거리고 집착하고..나의 광기가 점점 무서워진다. 아마 그만큼 진심이라는 것이 아닐까? 이런 구질구질한 진심 같으니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글이 나를 바꾼다라는 건 당연하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쓴다. 하지만 때때로 글을 쓰면 그게 나의 생각이 되기도 한다. 생각을 말로 꺼내는 과정이, 아주 많은 때에 말 먼저 꺼내놓고 그게 생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한국어 시간에 쓴 소논문처럼. 하하하하. (선생님. 잘 지내시나요?)
일단 그 전에 왜 소설을 쓰는가를 다시 복기해보려고 한다.
소설을 왜 쓰는가?
-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이해받으려고 하지 않는 나를 이해받기 위해서
- 이해받았던 순간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어서
- 나를 치유하고 보정하기 위해서
-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좋은 세상' 혹은 모험/재미/흥분을 느끼기 위해서
그래. 이게 동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루키가 말하는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어쩌면 저 4개의 카테고리 중에 첫번째에는 해당될 수 있겠다. 아마 세번째도. 하지만 내 글 대부분의 동기가 되는 네번째와는 동떨어진 것도 같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사실상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고 사람의 눈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험/재미/흥분이 있다. 그럼 사실상 다 있는 거 아닐까? 헷갈린다.
얼렁뚱땅 소설을 쓰는 이유가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을 언어화하기 위해.'라는 것에 동의를 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서 하루키의 혼돈설을 봐보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혼돈이란 어느 누구의 마음속에나 존재합니다..."이거 봐, 내가 떠안은 혼돈이 이렇게나 크다니까" 하고 남들 앞에 자랑스럽게 내보일 만한 것은 아니다, 라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내적인 혼돈을 마주하고 싶다면 입 꾹 다물고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혼자 내려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혼돈은,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당신의 발밑에 깊숙이 잠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95p)
너무 공감한다. 내가 떠안은 혼돈이 이렇게나 크다고 떠들 것은 아니다. 솔직히 '데미안'이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읽은 고전이 별로 없긴 하지만) 이런 것들을 소설이 아니라 그냥 누군가의 넋두리라고 하자. 그럼 그 넋두리 누가 들어줄 것인가? 남들 다 일하러 가는데 앉아서 '사랑은...사랑은 아픈거야.' 라고 중얼거리는 내 동료가 있다면. 그 사람 바로 아웃이다. '알을 깨야 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뭐라는 거야 하고 지나칠 것이다.
굳이 그 소리가 나올 이유가 없다. 소리는 소리일 뿐이다. 아프다, 힘들다, 어떤 고민들 혹은 고뇌는 다 그냥 소리에 불과하다. 그런 생각 내가 하고 있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거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혼돈.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
아래 카테고리들과 관련있는 혼돈이다.
-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이해받으려고 하지 않는 나를 이해받기 위해서
- 이해받았던 순간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어서
- 나를 치유하고 보정하기 위해서
-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좋은 세상' 혹은 모험/재미/흥분을 느끼기 위해서
참된 혼돈. 참된 혼돈.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 직면해야 할 혼돈.
너무 어렵다. 하지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결국 그 혼돈 속으로 들어가서 답을 찾아오게 되면 글은 나를 바꾸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아픔이나, 누군가의 세상이 깨지는 것이나, 혹은 학문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점이라든가.
내가 생각하고 찾아내고 깊숙이 들어가서 끌어낸 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글은 작가를 어떻게 바꿀까?
- 글은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을 풀어내며 나라는 사람을 또 만든다.
- 이 혼돈은 1)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감정/생각 2) 그걸 치유하고 보정하는 과정 3) 소설적 모험/재미/흥분을 더하고 4) 이 이해받는 순간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소설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