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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n 17. 2023

투고거절은 얼마나 버텨야 할까?

몽고메리의 "내 안의 빨강머리앤"과 함께 하는 작가 자의식 생성기

"그러나 슬프게도 '하우스홀드'편집장은 그 부인보다 더 낮은 평가를 했다. 원고도 되돌아왔다. 반송 우표도 넣지 않았는데...한동안 나의 열망은 무참히 뜯긴 싹과 같았다. 다시 일어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였다. 나는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시도해보기로 하고 '저녁의 꿈'을 다시 깨끗이 써서 샬럿타운의 '이그재머너'지에 보냈다. 이번에는 꼭 게재해주리라 자신했다. 종종 지면을 장식하는 시가 지금 생각해도 내 것보다 썩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거기에 '저녁의 꿈'은 그림자조차 없었다. 


나는 실패의 쓴잔을 남김없이 마셨다...굴욕의 먼지 속에 뭉개져 다시 일어날 희망이 없었다. 나는 '저녁의 꿈' 원고를 태워버렸지만 그래도 계속 시를 써나갔다.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잡지에 시를 투고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내 안의 빨강머리앤. 93p)


몽고메리 작가의 이 첫번째 투고거절 건에 대해 들으면 정말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한 번 넘어졌다고 절망하는 건 바보 같다는 걸 알아도 사실 아픈 마음은 어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번 거절 당했을 때, 다시 일어났지만 또 거절 당해 원고까지 불태우고 그 잡지사에는 다시는 투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달가울 수 밖에 없다. 


13. 투고 거절은 얼마나 버텨야 할까?


1. 일단 거절 당하면 마음이 아픈 건 당연하다.


"그동안 작품을 쓰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투고한 작품은 어김없이 되돌아왔는데,...어떻게 극심한 낙담에도 계속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다. 고민하며 쓴 소설과 시가 싸늘한 거절의 편지와 함께 반송되어 왔을 때 처음에는 큰 상처를 받았다. 나도 모르게 실망하여 눈물을 흘렸고, 잔뜩 구겨버린 애꿎은 원고를 트렁크 깊숙이 숨겼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내 안의 빨강머리앤. 98p)


방어기제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나는 이성화를 쓰는 것 같은데, 모든 걸 한없이 차갑게 보는 것이다. 한 번 쓰러졌다고 주저앉는 건 바보같은 일이라고 되뇌며 날 다시 일으킨다. 실제로 투고 거절이 30개 너머 쌓였을 때는 이제 그러려니 했다. 다만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왜냐면 다시 일어나기는 커녕 아예 주저 앉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절대 포기하지 말자, 라는 거짓된 다짐을 한다.


"하지만 돈을 좇는 악마가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나는 원고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 '뉴욕 선'지에 소설 한 편을 써서 보냈다. 그런데 그 원고가 반송되어 왔다. 살짝 뺨을 맞은 듯 주춤했지만 펜을 꺾지는 않았다. 이미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던 것이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내 안의 빨강머리앤. 97p)


'살짝 뺨을 맞은 듯 주춤했지만' 이 표현이 좋다. 뺨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든다. 나 자신이 부정당하는 기분도 든다. 그러나 '이그재머너' 잡지사에는 다시는 시를 투고하지 않아도 3년이 흘러 접었던 꿈이 다시 일어난 몽고메리처럼, 나도 결국 다시 글을 쓰고 꿈을 키울 것 같다. 


하지 않겠다, 상처받았다 해도 결국 그녀가 3년 뒤에 글을 쓴 것처럼 나도 결국 글을 쓸 것 같다. 한 번 반려당한 원고를 몽고메리는 태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큰 굴욕'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정당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굴욕에 반응했고 포기했다.


하지만 3년 뿐인 포기였다. 결국 필요했던 건, 넘어지는 마음이 아니라 버티는 마음이었다. 결국 그 마음과는 무관하게 그녀는 글을 계속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따라 문을 두드리느냐 아니면 돌아서느냐가 갈리게 되는 것이다.


3. 중요한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인데 정확히...


"하지만 괴로움을 이겨내고 단단해진 뒤로는 그런 것들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이를 꽉 물며 "꼭 성공할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스스로를 믿는다는 마음으로 은밀하고도 묵묵히 홀로 싸워나갔다. 나의 야망과 노력, 실패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모든 낙담과 거절의 수렁 밑으로 떨어지고 또다시 떨어지면서도 언젠간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고 믿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내 안의 빨강머리앤. 98p)

나는 스스로를 믿는다는 마음으로 은밀하고도 묵묵히 홀로 싸워나갔다. 모든 낙담과 거절의 수렁 밑으로 떨어지고 또다시 떨어지면서도 언젠간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마음으로 나아가면 경제적으로 마음소비를 줄일 수 있다. 어차피 글은 계속 쓸 거, 흔들리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불안감에도 도움이 되고 진득하게 글을 쓰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4. 원고들이 자신의 쉴 곳을 찾는다.


"물론 내가 쓴 작품을 모든 출판사에서 받아주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두는커녕 열 편 중 아홉 편은 되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원고들을 다시 보냈고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원고들이 자신의 쉴 곳을 찾곤 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내안의 빨강머리앤. 104p)


한 번 풀리면 그 뒤로 승승장구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다르게 몽고메리의 투고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녀가 빨간머리앤을 쓰기 전까지 단편과 시를 내며 부업작가를 하면서 많은 투고 거절을 받았다고 한다. 무려 '열 편 중 아홉편'은 반송되었다. 얼마나 희망적인가. 해피포터가 10번 넘게 거절당했다는 것도 희망적이지만 몽고메리의 말은 더 좋다. 하지만 100년 전에도 이렇게 투고 합격은 힘든 거구나, 싶어서 아득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원고들을 다시 보냈고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원고들이 자신의 쉴 곳을 찾곤 했다."


이 말이 처음 '저녁의 꿈'을 두번째로 반송받아 원고를 불태운 그녀와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 경이롭다. 이쯤 유튜버 돌돌콩님이 인터뷰에서 하신 말이 기억났다. 취준생의 바이블 같은 책이 있다고 말하시면서 "내 앞에 있는 한정된 양의 실패를 얼마나 빨리 쳐내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하셨다. 


내 앞에 있는 실패. 실패의 양은 정해져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만큼 있는지는 모른다. 결국 빠르게 실패하고 그걸로 방향성을 잡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메세지였다. 어쩌면 이 말이 몽고메리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그 투고거절의 이유가 나에게 있지 않고 다만 그 원고가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투고거절이 나를 흠집내지 않고 오히려 그 원고가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

나와 원고를 분리함과 동시에 실패를 결과로 보지 않는 마인드가 들어있다. 


결론적으로, 투고거절은 얼마나 버텨야 할까?

1. 투고거절의 양은 정해져 있다. 그 거절의 수를 빨리 쳐내고 결국 원고가 자리를 찾아가게 만들자.

2. 투고거절은 버티는 거라는 착각이 들지만 사실은 버티는 게 아니다. 나는 넘어지기 쉬운 존재다. 그러나 계속 글을 쓰는 존재기도 하다. 결국 글을 쓰는 건 똑같으나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가 내 행동을 결정한다. 넘어지는 마음을 가지면 넘어지고 버티는 마음을 가지면 지나간다. 쏟아지는 비 아래에서 우산을 쓸 거냐, 쓰지 않을 거냐 라는 선택과 비슷한 것 같다. 어차피 계속 걸어갈 거라면 우산을 쓰는 게 나을 것이다. 

3. "나는 스스로를 믿는다는 마음으로 은밀하고도 묵묵히 홀로 싸워나갔다. 나의 야망과 노력, 실패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모든 낙담과 거절의 수렁 밑으로 떨어지고 또다시 떨어지면서도 언젠간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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