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작가 자의식 생성기
분명 "난 길치고 해외에 산다"를 15화까지 써서 브런치 공모전에 내려고 했다. 근데 그 동안에 계획이 변경되어서 그만뒀다. 그리고 오늘 울프의 자기만의 방 책에 나와 있는 마지막 문장을 다시 볼려고 브런치에 들어왔다. 놀라지 마시라. "작가 자의식 생성기"에 써둔 건 다 내가 보려고 쓴 거다. 몇 개는 유통기한이 다 해서 상했기에 이제 8월 버전의 나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책의 구절이 상한 건 아니라서 보려고 들어왔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아니. 이럴수가.
나 "작가 자의식 생성기" 완전 많이 썼잖아?
이걸로 내면 되겠는데?
너 왜 몰랐냐?
21. 왜 난 계획대로 집필하지 못할까?
일이 계획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사실 안 좋다. 계획대로 되도 내가 지치고 일만 잘 되면 그것도 좋지 않다. 내가 행복하고 일이 지체되면 그것도 싫다.
그러니까 계획을 아예 세우지 말까 해도 난 J이라서 그게 안 된다.
심지어 무계획 모드도 해봤다. 그렇게 글이 쌓이고 그걸로 공모전에 넣으려고 했다가 중도에 멈췄지만 말이다.
계획모드도 해봤다. 웹소설 쓸 때 하다가 하루에 5천자 도저히 못 쓸 것 같아서 슬럼프 왔다.
그리고 작가 지인분에게 한풀이했더니 놀라시면서 "글이 쓰기 싫어요? 진짜 큰일이네." 하면서 쉬라고 했다.
이게 그렇게 큰일인가요? 울먹울먹거리며 일단 쉬었다. 별일 아니다, 다 이러고 산다. 이렇게 답할 줄 알았건만.
그리고 또 뭐 했지. 아무튼. 지금 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알 거다.
이 인간 라이브로 쓰고 있다는 걸.
어쩜 이렇게 나처럼 투명한 사람이 다 있을까.
(퇴고도 안 하고 맞춤법도 검사 안 돌리고 막 올리고 있는 거다.)
무려 괄호도 아주 막 쓰고. 사담도 팍팍 넣고.
인생사 계획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 계획이 무너질 때 나도 안 무너지도록 하는 게 계획이다. 부러질 때 부러지면 죽는다. 그때는 또 다른 계획으로 일단 일어서야 한다.
무너졌어. 부러졌어. 다 망했어. 이렇게 바닥에 널부러져 버리면 진짜 말한대로 되지만 지팡이라도 짚고 일어서면 다시 일어서진다.
근데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난 다른 말을 해보려고 한다.
난 생각보다 단순하다.
당신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우린 좋아하는 건 시키지 않아도 한다.
그리고 난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당신도 좋아한다.
특히 고민하고 있는 게 있다면 표현하고 싶어한다.
내가 "작가 자의식 생성기"를 쓴 것처럼.
그리고 좋아하기 때문에 행동하고 결과가 쌓인다.
마치 이 시리즈처럼.
하지만 그건 쉽게 죽을 수 있다. 내 마음만 들어가 있으니까 말이다. 이 시리즈에 대해 생각이 바뀐 건 드문드문 뜬금없이 아주 오래 전 글에 라이킷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리고 그건 때때로, 자주 이 시리즈 글이었다.
그러니까 누가 나처럼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왔고 (누추한 곳에 잘 오셨습니다)
이 글을 읽었다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어쩌면 당신과 나는 까먹은 게 있을 수 있다.
얻으려고 달리고 있다면 뒤를 돌아봐야 할 지도 모른다. 까먹은 게 있을 수 있다. 이미 내게 답이 있는데, 내게 소설이 쌓여 있는데, 나한테 에세이가 쌓여 있는데 내가 못 보는 걸 수 있다.
내 안의 작가는 꽤나 꾸준해서 (그리고 굉장히 독립적이라서) 마구 뭔가를 써놓는다. 하지만 내가 그걸 까먹을 수 있다.
물건을 잃어버리면서 자주 떠올리는 가사가 있다. nct dream의 가사이다.
모든 걸 다 얻는 것보다 무얼 하나 잃지 않는 게 더 소중하단 걸.
너를 통해 알게 되었어.
(유얼마이 미씽 퍼즐 피스: 넌 내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이야)
계획 다 소용없다. 당신의 작가는 계획이 다 있다. 당신이 모르는 거다.
그리고 당신의 글은 혼자가 아니다. 이미 소수의 독자들이 환호를 하고 있는데 까먹은 걸 수 있다. 처음 글을 보여줬을 때 솔직하게 좋다고 말해줬던 사람들의 말은 홀랑 까먹고 "이게 잘못되었다"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에게만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나?
완벽한 글을 쓰고 싶겠지만 (물론 나도) 그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까먹지 말자.
이 글을 좋아하는 건 나 뿐만이 아니다. 이 글은 가치 있다. 그들도 좋아한다. 이건 사실이고 내가 까먹었다고 해서 바뀌는 게 아니다.
그들의 말과 에너지를 고이 간직해서 글을 쓰는 원동력으로 삼자. 어차피 당신의 작가는 알아서 일을 잘해서 쓰고 싶은 대로 쓸 건데 이제 당신과 협업하려면 남의 인정이 조금은 필요할테니까. 윤활유로 써보자.
칭찬을 기억하자. 까먹지 말자.
나는 생각보다 글을 잘 쓰고 재능이 넘치고 내 글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내 안의 작가는 꾸준히 글을 쌓고 있다. 그걸 놓치지 말자. 바람을 불어서 불을 더 크게 만들어보자.
그건 내가 해야 할 일.
기억하고 칭찬이라는 윤활유를 붓는 것이다.
결론: 왜 난 계획대로 집필하지 못할까?
- 내 계획이 아니라 내 안의 작가의 계획을 들어야 할 타이밍일지 모른다. 시키지 않아도 쓰고 있는 글이 있지 않은가? 아니면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라던가. 있어보이고 좋아보이는 것들 말고 내가 꾸준히 쓰는 글 말이다. 그게 내 안의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 일을 까먹지 말자. 다 동일하게 가치 있는 것으로 봐주자. 그리고 칭찬 받은 걸 기억하자. 그렇게 내 에너지에 타인의 인정을 윤활유처럼 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