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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Aug 24. 2023

2. 제주도, 카드가 막힐 때 비행기표 사는 법 (2)

오프라인으로 사버린다

그래서 이게 내가 길치인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길치가 왜 길치겠는가. 길을 못 찾으니까. 길을 찾을 줄 알면 내가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게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왜?


찾을 거니까!


그러니까 난 최대 미로에 빠진 거다. 그것도 바다를 건너서 집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홍콩과 한국의 거리에 비하면 제주도와 경기도의 거리는 아주 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섭다. 준비되지 않은 비행기 티켓, 숙소,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들. 이런 요소들이 흔들다리처럼 날 마구 흔들고 있었다.


수련회가 잘 마무리될 쯤 공항에서 비행기표가 취소되었다. 그러니 패닉을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이제 진짜 실전인가.' 싶은 웅장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침을 꿀꺽 삼켰다. 실제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바로 왔다. 고난 등장.


나 빼고 다 괜찮아보이기는 했으나 사실 내 또래는 다 긴장했다. 그런 그들에게 내 티켓을 맡기고 싶지 않다. 일단 할 수 있는 걸 하기 위해 일어났다. 앞에는 직장인들이 월요일 출근을 위해 열심히 티켓을 구하기 위해 핸드폰 화면을 재고침하고 있었다. 그 앞을 뚜벅뚜벅 걸어가 누군가를 찾았다. 제발 아무나 도와주세요. 외치면서 땅바닥에 누워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아니. 절대 안돼. 다들 바빠. 홍콩에서 많이 느꼈던 책임감이 내 등을 떠민다. 말을 조금 더듬으면서 말도 처음 걸어보는 전도사님한테 물어봤다. 직접 티켓을 사고 싶은데 어디서 사야 할까요?


그리고 걸어나가 인포메이션에 물어봤다. 직접 티켓을 사고 싶은,


아 뒤에요?


등을 돌자마자 항공사가 주르륵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난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

실수할 때마다 자주 외우는 자학 멘트를 빨리 떨쳐버리고 유려한 한국말로 항공사로 찾아갔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참 한국말 잘 한다. 그렇게 티켓을 샀다. 그러면서 덜덜 떨면서도 피식 웃었다. 사고가 많아야 쓸 이야기 거리가 많지. 그래. 이거 이야기감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봉고차에 타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옆에서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아서 사탄의 공격이 왔다며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는 그 말 할 줄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멍하게 앉아 있었다. 너무나 인정. 미간이 찌푸려진다. 뭐? 표가 취소가 돼? 항공사는 도대체 어떻게 배상하려고 내 표를 취소시켜.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다. 역시나 아수라장이었다. 그 난리법석 사이에서 강당에 모여 자연재해가 일어나서 학교 강당에 모인 사람들처럼 덩그러니 모였다. 앞에 언니가 공항버스를 잘 못 끊기에 예약도 열심히 도와줬다. 무려 카드까지 빌려줬다. 그 큰눈이 깜박거리는 걸 보며 오지랖이지만 참 부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은은히 웃으며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도 공항에서 누가 이렇게 도와주길 바랬는데. 내가 해줬으니 됐어. 


다들 괜찮기는 개뿔. 하나도 안 괜찮았어. 그냥 표현을 안 했던 거야. 


속속들이 공항에서 사람들이 숙소로 다시 돌아온다. 하얗게 질려서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의 남자분이 내일 발표 못 한다고 우다다다 토로하는 걸 엿들었다. 정말 난장판이구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아는 언니와 함께 강당 바닥에 대 자로 누워서 생각하던 중이었다. 


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차피 도움이 안 될 거면 마음 졸이면 안돼. 그게 제일 바보짓이야.


난 도움도 안 되는데 나 혼자 마음 졸여봐야 뭐해. 그냥 편하게 있자. 


그녀가 풀어진 얼굴로 천장을 보며 말했다.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입꼬리를 야릇하게 씨익 올렸다. 


저 세계가 있고 이 세계가 있는 것 같아. 


못 알아 듣고 언니가 보는 시선을 따라 보았다. 서 있는 누군가의 다리. 그리고 누워 있는 우리들. 나와 그녀는 천장을 보고 있다. 우리의 시각은 누워있다. 깨달음을 얻고 웃음이 터지면서 재차 물었다. 


"세로의 세계랑 가로의 세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저절로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무 맞는 말.


"말도 잘 안 들리는 것 같아."


그녀가 서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그녀를 보며 같이 바보처럼 웃어버렸다. 너무 웃어서 앞에서 저녁 밥집 고르는 언니오빠들한테 미안할 정도였다. 지나가던 다른 언니가 멈춰서서 말했다. 


"사진 찍어줄까?"


얼마나 명물이면 사진을 찍어준다고 할까. 기분이 아주 좋아지고 긴장이 아예 풀려버린 나는 혼쾌히 승낙했다. 찍힌 사진 속에서 나는 생각보다 미친 사람 같았다. 행복해보이는데 약간 너무 행복해보인달까? 절대 아무한테도 안 보여줄 정도랄까. 말을 아끼겠다. 아무튼 그때 당시에는 기분이 좋았으니 됐다. 


그렇게 있다가 정말 쉼을 얻어버린 이 제주도의 오후를 잘 보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언니오빠들과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고 처음 보는 언니가 운전하는 렌트카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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