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작 21살이라니
일기.
연애의 환상이 깨졌다. 난 항상 드라마 속 남주인공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신데렐라 판타지는 구시대적 발상이라 생각도 안 했으나, 그걸 채운 건 다른 판타지였나보다. 어렴풋하게 추측하는 건 내 환상은 “좋은 남자친구를 만나면 내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확신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러니 완벽한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조금은 자랑도 하고 싶었고 날 내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줄 사람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간신히 알게 된 것은 누군가를 만나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이미 행복한 내가 그 사람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 연애라는 것.
연애는 사람 자체를 보는 것. 그 사람을 더 알아가는 것. 친구와 관계가 깊어지듯 시간을 들이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
난 정말 자라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보내는 눈맞춤 한 번에 밤을 새버린 게 나도 믿기지 않는다. 오늘 하루 종일 후회했다. 정말 미친 짓을 했다고. 죽을 것 같이 힘든데 어찌저찌 집에 기어들어갔다.
올해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내게 호감을 표현하는 그 남자에게 내가 돌직구를 날려버린 것이고, 그때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린지 알았다. (우유부단하게 좋아하는지 아닌지 재는 거 하기 싫다고!! 그냥 말해달라고!!) 난 뭐든 다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애정은 표현하는 법만 알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관계에 대해 성숙하지 못했던 것 같다.
봄이 오고 사람들은 연애를 하고 싶어한다.
나 하나도 간수하기 힘들다고 볼멘 소리를 했었다. 그러나 왠지 천천히 다가오는 그 사람이 나쁘지 않다. 남자친구라는 내 환상을 없애고 그 사람 자체를 보고 싶다.
누군가가 로맨스는 불확신과 확신의 이야기라고 했다. 날 사랑하는지 확인받고 싶어하고 그걸 확인시켜주는 그 과정이 로맨스라고 한다. 그 말은 사랑은 항상 불안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날 좋아하는지 그 입으로 확인받고 싶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이 관계에 좀 더 시간을 들여야겠다. 친구를 사귀고 천천히 친해지는 것처럼.
빨리 다가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기를.
결혼과 연애.
한 30년은 먼 이야기 같았는데 어느새 내 앞에 성큼 다가왔다.
결혼이라. 연애라.
스쳐지나가는 봄바람일까? 또 상처받을까?
다만 기도하는 것은 이게 주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라면 부디 이 모든 순간을 감사하며 지나가기를.
내 존재 자체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과는 다르게, 이성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믿기지가 않는 일이다. 남에게 신뢰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남과 남. 가족이면 혈연으로 이어져 있는데 완전한 남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관계가 이어진다는 게.
아니, 친구는 충분히 그렇게 관계가 이어져왔었다. 모르겠다. 그만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