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쓰고 처음 배워보는 소설이라 읽는다
소설은 내 도피처였다. 현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길 꿈꿨다. 그러다보니 내게 소설은 너무나 당연한 무언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계속해서 어려워져만 갔다.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가족처럼, 가까이 있어서 더 힘들고 불편해져갔달까.
그런 이유로 전문적으로 소설을 배우고 싶었다. 좀 더 정돈된 모습의 소설을 알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소설을 쓰는 법보다, '소설은 무엇인가'가 더 궁금했다. 소설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좋은 소설에 대해 생각하며 너무 오랜시간 지쳤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팟캐스트인 일기떨기를 주구장창 틀어놓다가 (고삼 때 24시간 매일 틀어놓았던 팟캐스트다. 정보: 글 쓰는 세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다가 '한겨레 교육'이란 단어를 들었다. 그때 "아, 저렇게 글을 알려주는 곳도 있구나."하고 깜짝 놀랐다.
이제 내 대학교는 1학년이 끝났고 여름방학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김에, 장장 4개월인 방학에 뭘 할까 생각하다가 글을 배우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겨레 교육에서 강의를 열심히 찾아봤었다.
그러나 이런. 왜 이렇게 비싸지?
돈 한 푼 안 (못) 버는 학생에게 30만원은 숨이 턱 막히는 금액이다. 거기다가 내 마음을 울리는 소개글을 가진 강의는 50만원이었다.
아주 깊은 고민에 들어갔다. 대학 합격 축하기념으로 주신 백만원을 여기다가 들이부어...? 잠깐 고민했다.
결국 이중 고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강의 한 번 듣는다고 글이 느냐! vs 너 이 돈으로 다른 거 할 수 있잖냐! 이렇게 두 자아가 싸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겨레를 쓱쓱 스크롤을 넘기며 구경하다가 나의 자아는 극적으로 타협하게 되었다.
온라인 (서울 안 가도 됨) + 30만원 이하 가격 + 꽤나 마음에 드는 '소설이란' 주제의 강의.
...를 가진 온라인 수업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길로 어떻게 아빠 카드를 안 쓰고 내 카드로 결제할 것인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런 내 옆에는 시험 9일 남아서 허허실실하고 있는 (아니, 정신을 놓은) 의대생 룸메 언니가 있었다.
"너 도대체 뭐하냐."
"언니. 나 글 쓰는 거 좋아하는 거 알지."
언니의 약 한 달도 안 된 (...!! ㅠㅠ언니의 연애가 성사되었다. 그녀의 인생은 드라마다.) 연애를 들어주다가, 언니가 내 컴퓨터를 유심히 보며 어이 없다는 듯 물었다.
그때 시각 새벽 2시. 원래면 밤 10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는 요상한 한국인 룸메가 그때까지 깨어서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으니 이상해보였나 보다.
나는 언니에게 와다다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 써둔 내용들과 엇비슷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열심히 내 카드로 결제하는 방법을 찾다가 국민은행 결제 방식이 아주 다 바뀐 걸 알아챘다. 재외국민의 슬픔이란 항상 이런 것이다. 바로 한국 전화번호가 없다는 것.
"....? 전화번호?"
계속 내게 전화번호를 쳐야 결제가 된다고 하는데 나는 손을 다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한국 전화번호가 있는 유심은 지금 내게 없기 때문이다. (아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공기계에 넣어뒀던가?)
그래서 더 애타게 결제하려고 애썼다.
결국 했다.
계좌이체로 해결했다.
그렇게 내 인생 처음 10만원이라는 거금을 쓰게 된 것이다.
그것도 글쓰기에 10만원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토플에는 100만원도 넘게, IB에는 그것보다 더 많이, 여타 피아노, 생기부 활동에는 더 많이 쓴 것 같다. 그러나 이 10만원이 의미있는 이유는 아마 내가 소설을 사랑하기 때문일테다.
누군가에게는 길가의 돌멩이라도 (10만원이 돌멩이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금보다 더 소중할 수 있을지도 않을까, 라고 생각한 오늘이다.
***
그래서 강좌는 어땠는가!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라는 말이 날 가볍게 만들어줬다. 그렇지. 그렇구나 이런 반응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그 재미에 의미가 더해지면 더 재밌어진다고 했다. 의미란 세상/인간/인생에 대한 단편적인 '~일지도 모른다'는 감상이라고 해석되었다. 독자를 가르치거나 강요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또, 인물이 움직이지 않는 부분은 썩는다고 말했다.
소설은 보편적인 인물의 개인적인 행동으로 이루어진다고도 했다.
나는 특히 '의미란 세상/인간/인생에 대한 단편적인 '~일지도 모른다'는 감상'이 굉장히 반가웠다. 왜냐면 그 순간에 왜 내가 소설이 싫어졌는지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내 글 중에, "쓸 거 못 쓸 거 안 가리고 다 쓰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다 지우기로 했다." 라는 글이 있다. 소설의 의미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는 다 휩쓸리고 있었기에, 힘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정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틀린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도대체 어디를 가야하는지 몰랐다. 그 당시, 친구에게 "소설의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다." 라고 찡찡댄 것처럼 말이다.
결국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나라는 인간이 단단하게 서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내 생각을 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재미.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나의 가치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 인간, 인생에 대한 생각을 내보내는 것이지 다른 이의 가치관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