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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이 나를 죽이러 올 때. (1)

아아아아아아 부끄러워..부끄럽지 않을 때까지...써봐야겠다...

by 바다

“이게 미쳤나.”

K가 픽 웃다가 얼굴을 구겼다. 그가 앞에 있는 거울을 맨주먹으로 콰앙 내려쳤다. 유리 조각이 얼굴 위로 우스스 떨어졌다. 그러나그에게는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얼굴 위로 서서히 실금이 가며 피가 송글송글 맺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떨리다가서서히 위로 찢어졌다.


‘여긴 소설 속이다.’

어제는 그 여자를 죽였다. 그저께는 다른 여자를 죽였고. 모두 산에 묻어두었다. 그런데 오늘 왜 또 그 하얀색 플레어 스커트 여자를죽이고 있는 거지?

피 묻은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는데 그때 더럽게 싸한 기분이 들었다.

뒷덜미의 솜털이 모두 솟는 오싹함.

분명 난 내 뜻대로 죽인 것이었다. 다 내 아래니까. 그런데 저 깊은 심연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다.

네가 아무리 날고 길어도, 넌 내 손 안에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다시 거울을 보았을 때, 깨져있어야 할 거울은 멀쩡했다. 피로 범벅이어야 할 그의 얼굴도 말끔했다.

거울을 깼는데 거울은 멀쩡하다.

소설 속에 써져있지 않은 일이라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 정말 K는 누군가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

“어떤 새끼가 날 여기에 가두었을까.”

미친 새끼.

그가 발은 숨을 하늘을 향해 토해냈다. 어쩐지 표정은 희열에 가득차있었다.

“여기가 진짜 세상이 아니라고?”

K는 미친 듯이 웃다가 한순간에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어느덧 시간은 아침이었다.

K가 가게의 문을 열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흘낏 그를 보다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가 수더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를 뒤따라오던 아이들이 재잘거리다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형! 11권 들어왔어요?”

“어어.”

K가 사람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한 가지로 가득차있다.

난 진짜 세계로 가겠다.

그가 만화방 앞에 놓인 신문을 들었다. 3면까지 뒤적기라다가 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구인광고 칸에 적힌 의미심장한 광고였다.

환상의 세계로 모시겠읍니다. D 도서관.

사서 구합니다.

특이사항: 환상 3급이상.

순진한 척 연기하고 있던 K의 얼굴이 한순간에 비틀렸다. 그가 광기에 가득한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상적이지 않은 저 구인광고.

왠지 모르겠지만 머리에서 누군가가 말하고 있다.

저거라고. 저게 이 거지같은 소설 속에서 벗어날 방법이라고.

“소설 누가 썼는지. 전개 하나 좋네.”

그가 기쁨에 가득차 속삭이며 구인광고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나 K는 몰랐다. 이미 소설은 그로 인해 변하고 있다는 것을.

***

“최시후 작가님!”

시후는 플래시 라이트에 눈을 찌푸렸다. 그가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은이 눈을 부릅 뜨고 그를 보고 있었다.

영화 시사회에 원작 작가로 서서 가만히 인사만 하고 와라. 절대 이상한 말 하지 말라고.

지은이 어제 단단하게 말해놓았기 때문이다. 시후는 멀뚱히 상영관에서 자신의 소설 ‘살인자의 도시’로 만든 영화를 보았다. 보며 참많은 질문들이 입에 총알처럼 우글거렸다. 자신이 쓴 소설을 완전히 망쳐놓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후만.

시후만 그렇게 생각했다. 기립 박수를 치는 관객들 사이에서 미간을 조인 채로 시후만 그렇게 생각했다.

영화는 성공적이었다.

성공을 넘어서 대성공. 대한민국 인구수를 생각하면 나올 수 없는 관객수를 찍으며 안 그래도 높은 시후의 명예를 쭈욱 올린다.

그러나 현재 시후는 자신이 섬세하게 만들어 놓은 K의 감정선을 이렇게 싸그리 다 없애 놓은 게 아주 기분이 나빴다.

“작가님. 소설 잘 봤습니다.”

기자가 벅차올라 그에게 말을 던졌다. 시후는 마이크를 잡고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쩌라고. 소설 잘 봐서 어쩌라고.

그럼 내 소설을 누가 잘 안 보겠냐고. 나 최시후인데.

시후의 얼굴은 정말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기자는 그 오만함에 기가 눌려 안쓰러운 눈을 굴리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 영화가 소설을 정말 잘 반영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데.”

시후가 딱 잘라 대답했고 상영관이 싸해졌다.

바쁘게 이메일을 답장하던 지은이 눈을 번쩍 떴다.

시후는 마이크에 조곤조곤 말했다. 그럴수록 기자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내 소설을 망쳐놓았던데. 3년을 내 소설을 읽었는데 어떻게 이해도가 이렇게 없지?”

“네?”

“난 정말 모두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이게 재밌어요?”

지은이 급하게 음향팀에게 손짓했다. 저거 끊어! 저거 끊어요! 마이크 끊어버려!

그러나 시후는 곧 마지막 말을 하고야 말았다.

“다들 좀, 보는 눈이 없네.”

듣다가 진성일보 기자가 눈을 감고 피식 웃었다.

그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급하게 타이핑을 했다.

‘저 오만방자한 놈.’

욕 좀 먹어봐라.

그의 노트북에 열나게 타이핑하는 손가락은 기사를 썼다. 최시후의 인성폭로를 위한 기사였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의 실체를 알리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최시후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베스트셀러 작가 최시후, “보는 눈이 없네” 영화 폭로…

시후가 그를 알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었다.

오만하게 그를 깔아보며 웃음기 없이 건조하게.

“세상은 날 배신한 적이 없어요. 사람들은 천재를 사랑하거든.”

그러니까 네가 쓰는 그 기사 따위는 날 무너뜨릴 수 없다고.

그리고 시후의 말은 맞았다.

시후는 천재 작가였고, 세상은 천재를 사랑했다.

그 기사 다음날 시후의 추리소설 ‘살인자의 도시’는 다시 전례없는 판매수를 찍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시후의 소설 속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시후의 인성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작가가 착해서 소설을 읽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지은에게는 말이 다른 것이었다.

“작가님!!”

시사회에서 나온 시후가 반갑게 뒤돌았다. 긴머리를 찰랑거리며 뛰어오는 서지은이었다.

“왔었어요?”

시후가 살짝 들떠서 물었다. 그녀가 시사회에 왔는 줄 몰랐다. 지은은 눈을 지긋이 감고 미간을 조였다. 그녀가 나즈막하게 말했다.

“네. 전할게 있어서요.”

“뭔데요?”

“그 제가 번역했던 작가님 책이, 수상했대요.”

속사포로 말하고 나서 지은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건냈다.

“작가님. 꼭 그렇게 말했어야 해요?”

시후가 눈을 껌벅거렸다.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지은이 빠르게 말을 설명했다.

“좀 더 돌려서 말해도 되잖아요.”

그가 느리게 고개를 기울였다. 삐딱하게 기울여진 고개로 지은을 지긋이 응시했다. 시후가 한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네?”

지은이 어버버하게 반문했다.

시후는 답했다.

“시간 아깝게 왜 그런 짓을 해요.”

“아. 시간.”

지은이 질린다는 듯 말꼬리를 흘렸다. 그래, 최시후는 이런 남자였지.

자기 잘난 맛에 살아서 남은 관심도 안 쓰는 사람.

시간 아까워서 모든 사람들 기분 망쳐놓았구나.

어차피 아무리 욕해도 다 그의 소설에 미쳐 못 사니까.

변하는 건 없는 거지. 배우는 것도 없고.

최악이다.

“어디 수상인데?”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던 지은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맨부커상이요.”

“…오.”

시후가 살짝 놀랐다. 지은은 오히려 그 모습에 심장이 다시 뛰었다. 지 잘난 맛에 사는 오만한 작가도 이 정도 수상은 놀라는구나, 싶어서.

그러나 곧 그가 말하면서 지은은 약간 남았던 인류애가 사라졌다.

“사람들 보는 눈은 다 똑같다니까.”

시후가 생각에 빠져 중얼거렸다. 3년전에 영화화 계약에 서명한 후 갑자기 번역 작업을 하자고 했을 때는 관심도 없었다. 자신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뭔 번역본을 만드냐 했는데.

서지은 번역가.

지은을 만나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지은이 마음에 들었다. 예상할 수 없는 점이 특히 좋았다.

그랬는데 뜬금없이 수상을 했네.

지은이 얼굴을 팍 구긴 채로 싫다는 티를 팍팍 냈다. 그녀가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참석하래요.”

“꼭 가야해요?”

시후가 지은의 팔목을 빤히 보며 물었다. 팔목에 시계줄 부분만 피부가 하얗다. 네번째 손가락에 오래 낀 반지 흔적이 있다.

그가 합리적인 추리를 이어갔다.

‘헤어졌나?’

지은은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다. 물론 지은이 한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그러면 뭐하나, 지은의 모든 게 그렇게 말해주는데.

오래된 가죽줄 시계는 다 깨졌었고, 반지도 트렌드에 한참 벗어난 스타일이었다.

아까 핸드폰 비밀번호는 누군가의 생일이었고 언젠가 우연하게 보았을 때,

그건 이 영화감독의 생일이었다.

시후가 깊게 상상에 빠졌다.

“왜 헤어졌지?”

“뭐요?”

지은이 얼굴을 구기며 날카롭게 물었다. 시후는 고개를 젓고 화제를 돌렸다.

“거기 가면 뭐가 좋은데요.”

지은은 멍청하게 반문하는 짓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녀가 눈을 꽉 감고 숨을 골랐다. 당연히 갈 줄 알았더니 수상식 꼭 가야하냐고 물어본다. 머리가 아파온다.


**


여담.


고민이 많다. 웹소설로 쓴 건데 내용이 너무 뜬금없나 싶다.

bite-size failure (한 입에 꿀꺽 삼킬만한 실패; 작은 도전)로 '현판 웹소설 히어로 소설'을 시작했다. 30화는 써 볼 생각이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출처인데..나 잘 쓸 수 있을까?


웹소설 제목도 고심하다가 '천재작가는 마법사다'라고 만들었다. 지금은 고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천재작가고...마법사가 될 거지만...추리가 갑자기 소설의 큰 부분을 차지해버려서...

그래도 제목에 추리를 넣어야 하지 않을까..?


외과 의사 (닥터스트레인지)-> 전문직 -> ...천재작가?

마법세계 -> 소설 속 세계 -> 창작물에 관한 마법..?

이렇게 되어가지고 이런 글이 나왔다.


요즘은 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내 글을 보면 장점이 뭔지 바로 알겠다는데 난 모르겠다. 단점만 잘 보인다. (좀 유치하고..설명도 잘 못하고.. 비유도 잘 못하고..그냥 다 못하는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건 내가 글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다. 그리고 난 잘 쓴다라는 대책없는 자신감이 있다. 그냥 말만 이렇게 자학하는 것이다.)


희미하게 내 장점이 뭐였는지 기억은 난다. 아이디어가 새롭다는 거?


새로운가? 쓸 때는 새롭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드라마 'W' 내용이랑 엇비슷하다. (제길)

유일무이 새로운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말이다.


글은 월&금 연재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제 글쓰기 강의를 수강해야 해서 이거 좀 몸에 익으면 그 다음에 다시 연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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