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차 - 고택에서 바라본 은행나무
11월 셋째 일요일 오후 늦은 가을 풍경을 보러 갔다. 밀양은 고택이 많다. 집에서 가까운 곳, 20분 거리에 금시당, 오연정이 있다. 이곳에는 오래된 은행나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주차장이 부족해 길가에 차들이 줄을 서 있다. 토요일 '우리 동네' KBS 방송 이후에 갑자기 관광객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오연정으로 가는 비탈길로 올라갔다. 10월의 오연정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끄는 것은 노란빛이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가족, 친구, 연인 등 많은 사람이 은행나무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가을을 눈에 담고 있다. 햇빛이 비쳐 반사되는 노란빛이 세상을 밝게 하고 마음도 환하게 한다.
오연정의 은행나무는 세월이 오랜만큼 은행나무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오연정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멈추는 곳이다. 오랜 세월 동안 밀양의 마을 사람들을 지켜보며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황금빛 잎사귀가 햇살에 반사되어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고 정자의 고색창연한 기와와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룬다. 오연정의 은행나무는 단순한 경관을 넘어 생태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 존재다. 웅장하면서 거대한 은행나무와 고택의 아름다운 조화가 이곳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안으로 들어가 본다. 오연정은 조선 명종 때 문신 추천 송영제가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정자다. 퇴계 이황의 제자로 학문과 덕을 중시했던 인물이다. 오연정은 처음 세워진 뒤 여러 차례의 화재와 전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936년 후 후손들의 정성으로 다시 세워졌다.
이곳의 특징은 누마루가 정면 왼쪽으로 이어져 나와 한옥의 품격을 보여준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조선 선비의 기풍과 풍류가 깃들어있다.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밀성 손 씨 집안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오연정 누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다. 밀양강이 시원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함양, 울산 간 고속도로가 멀리 보인다.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체되어 있는 풍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뒤에는 추화산이 포근히 감싸고 앞에는 푸른 밀양강 물줄기가 흐르는 이곳은 바로 배산임수의 명당자리가 아니겠는가. 이곳에서 차 한잔하면서 다담을 나눈다면 그 기쁨이 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밀양강을 바라보면서 등을 보이고 사진을 찍고 있다. 그 모습이 예쁘다. 나도 외부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강을 바라보면서, 강을 등지고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온다.
명소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북적인다. 고택에도 사람이 많이 와야 다시 살아난다. 울산에서 왔다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자기들도 고택이 있는데 집안 어른들이 개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 와서 보니까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경관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개방하는 것이 오히려 고택을 지키는 일일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도 그의 말에 찬성을 하며 차라도 한 잔씩 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는 아이와 잘 놀아주고 있었다. 엄마는 마루에 잠시 앉아있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니 울산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면 금시당 은행나무도 보러 가라고 안내를 해 주었다. 젊은 부부는 감사하다고 했다. 젊은 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를 쓴다는 생각을 했다. 고택 누마루에서 바라보는 기와 넘어 은행나무는 해지는 줄 모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가을이다. 어디든 가서 가을을 봐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가을의 빛을 가득 안고 돌아오면 그 빛과 함께 나의 모습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절, 가을을 눈으로 가슴으로 안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