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실패시즌2_16화 / 미영
평일 내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도 따로 자기 일을 하며 틈틈이 술까지 마셔야 하는 보라는 정말로 바쁜데 그런 와중에도 주말에 서울을 간다고 하길래 대체 무슨 일이냐 물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좋은 전시회가 열린단다. 저런 스케줄에도 감행할 정도라면…….
그래서 알아봤더니 전시회를 거의 가 본 적이 없는 나도 절로 흥미가 생기는 주제라 서울에 사는 다른 친구도 볼 겸해서 기차표를 끊었다.
모든 여정 동안 손 소독과 마스크 착용에 유의하고 다른 사람들과 충분한 거리를 두었음을 먼저 밝힌다.
이제 글을 시작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라 대충 이런 전시회겠구나~ 하는 느낌만 가지고 갔다. 그 덕에 뒤통수를 좀 맞았다.
페미니즘뿐 아니라 미술사적 지식도 상당히 부족한 나이므로 적합한 설명은 불가능하겠으나 어쨌든 브래지어와 교복 치마만 사라져도 여성 범죄가 상당히 줄어들어 있을 것이라 믿는 내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말과 글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적합한 수단인 것은 분명하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가끔은 복잡한 문제일수록 직설적이고 폭발적인 것의 힘을 믿을 만하다고 본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있어 '언젠가 인류가 깨끗한 공기와 물을 섭취할 수 없을 것이다'가 아니라 '네가 몇 살때 암에 걸릴 것이다'라고 경고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어느 정치가가 말한 적이 있다. 뭐든지 인간은 자신의 오감을 자극하는 충격이 있어야 그제야 한 번이라도 뒤돌아본다는 것이다.
사회적 여성성이 얼마나 유해하고 기이한 것인지를 오감으로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전시였다. 그런데 좋은 전시회를 보고 온 것으로도 모자라 내가 연재 실패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의미 있는 주제로 한 편을 완성했다고 생각하니 참 뿌듯하다.
그런 연유로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마무리를 지어 볼까 한다.(절대 대충 분량을 늘리겠다는 의도가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모두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자기 삶을 이어 가는 것뿐이야. 특별히 어떤 곳을 방치해서 나쁘게 만들어야겠다는 악의 같은 건 전혀 없이 말이야. 악의는커녕 당연히 다들 세계가 더 평화롭고 좋아지길 바라고 있지 않겠어? 변화는 그런 하루하루의 삶과 희망 속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거잖아. 세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점진적 변화'라는 말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공무원들이 듣기 좋으라고 지어낸 얘기야. 내가 다윈 너에게 공부로 조언할 주제는 못 되지만 역사책을 봐 봐. 세계를 바꾼 역사적 사건들은 알고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거 아니야?"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사계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