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퇴사 전 꼭 확인하는 것 2

내가 월급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인가요?

by 배작가

Q. 내가 월급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인가요?


다시 이 질문에 돌아와 엑셀을 켰다. 월 지출을 고정비(대출 이자, 관리비, 인터넷, 휴대폰, 유튜브, 저금, 투자)와 변동비(주유, 식비, 쇼핑, 미용, 운동, 여행, 비상금)로 나누고 토스와 카드내역서를 뒤져가며 금액을 채웠다. 채우고 보니 진짜 월 생활비 천에 수렴하게 꽤 많이 쓰고 살았긴 했다.


그리고 없앴다. 내 시간을 아껴 준다고 믿었지만, 사실 이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내 시간을 저당 잡혔던 세상 쓸데없는 지출을. 집 청소 서비스, 방문 세차, 1:1 요가, 1:1 필라테스, 1:1 골프, 승마, 5성급 아니면 안 갈래 했던 여행, 내 사랑 오마카세, 전신 마사지, 피부 마사지, 경락, 헤어클리닉, 두피클리닉, 쇼핑 스타일리스트, 헤어메이크업, 쿠팡 와우 연회비,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까지.


카드 내역서를 보는데 실소가 튀어나왔다. 지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안 한다고 안 죽는 지출을 없애니 매달 140만 원을 저축 또는 투자하고 비상금을 100만 원 빼놔도 나는 월 천이 뭐야 그것의 절반도 안 되는 비용에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었다. 다시 말해 월 200만 원대에 살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인간이라는 것.


나는 예나 지금이나 쇼핑이 세상 귀찮아 쇼핑을 2시간에 압축해 같이 해주는 스타일리스트까지 고용한 나태인으로서. 어떤 유형의 물건, 특히 명품을 사는 데는 하등 관심이 없다. 친구들이 부디 관심 좀 가지라고 부추길 정도로 없다. 대신 내가 관심 있는 웰니스 분야에서 질 좋은 교육 또는 서비스를 경험하고, 이를 내 몸으로 배우는 데는 내 분수에 맞지 않게 쓰고 앞으로도 쓸 생각이다.


따라서 생활비를 더 줄이려면 100만 원대로 줄일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 없다. 백수면 백수지 마음까지 백수 일 수 없다. 소중한 내게 아주 넉넉하게 인심을 베풀어 생활비를 월 500으로 설정했다. 그럼 쓸데없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내 수건은 내가 게는 사람이 되면서도, 내가 나에게 그리고 남에게 여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월 500씩 쓰면 1년에 6천이 필요하고, 이건 퇴직금으로 퉁치고도 남았다. (퇴직금으로 퉁이 안 쳐지는 경우 실업급여 옵션도 있는데 이것도 풀자면 글 하나라 생략한다.)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도, 제법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나는 첫 6개월 동안 의도를 담아 땡전 한 푼도 안 벌 계획이며, 나머지 6개월은 엉금엉금 1인 사업가이자 배작가로 수익을 낼 거다. 그렇게 내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도, 한 치 앞이 안 보이고 지금 이 결정을 땅을 치고 후회하면 그때 회사에 돌아가면 된다.


이렇게 직접 계산기를 두들겨보기 전까진 나는 막연히 불안했다. 매달 월급이 안 꽂히면 내가 길거리에 나앉는 줄 알 정도였다. 그래서 매일 밤 불편한 편의점 소설책을 보면서 노숙자의 삶을 상상하기도 했다. 이 말을 하니까 친구가 진짜 나앉게 되면 그냥 자기 집에서 살면 된다고 했다. 그럼 나앉는 것도 퇴사를 버티는 핑계가 안된다.


월급 없이 살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그럼, 도대체 뭐가 확인돼야 나는 비로소 사직서를 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과정은 EPISODE 3에서. 피쓰.


+) 사진은 제발 명품 하나는 갖추고 살라는 친구 조언에 감행한 내 생애 첫 샤넬 쇼핑.. 사람들이 거기 뭐 들어가냐고 했던.. 손바닥만 한 미니백에 700을 가까이 줬는데 일 년도 안 돼 두 동강이 났다^^^ 700을 샤넬이 아닌 경험과 배움에 소비했다면 적어도 두 동강 날 일은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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