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겨우 버티는 일이 누군가에겐 연료고 생명일 수도 있는데
“그런 책은 안 팔려.”
이 말을 뱉은 즉시 나는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짓이 무슨 짓인 줄 정확히 알게 되었다. 회사 안팎에서 확실하게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이왕 한 김에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해온 게 아까워 버티는 짓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뭘 성취해도 담담하고, 이 담담함이 시간을 통과해 비로소 출근길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담담했던 건 아닌가.
“작가가 되기 전과 후 어떤 게 달라졌는지요? 작가가 되기 전에는 뭔가 찜찜했어요.”
정정한다. 퇴사를 도와준 낯선 사람의 말 한마디가 아닌 한 단어다. 정작가님이 건넨 단어 “찜찜함”이 나를 쿡- 하게, 아리게 찔렀다. 나는 이 “찜찜함”의 감정이 뭔지 정확하게 안다. 글로 뱉어내지 않으면 이게 하나 둘 내 마음에 쌓여 찜찜함, 아득함, 절망을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찜찜함”은 연료고, 생명이다.
하지만 회사 내 상품 기획자로써 내가 쓴 “찜찜함” 단어의 사용처는 달랐다. 나는 액체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찜찜하기” 때문에 고체 샴푸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나는 액체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찜찜해서 여행을 갈 때도 고체 샴푸를 챙겨가는 편인데, 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액체 샴푸로 감는다. 별 상관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목숨을 걸고 팀원 전체를 고체 샴푸 론칭을 향해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내게 별 상관없는 마음으로 누굴 설득할 수 있나.
24시간 고체 샴푸만 생각하면서 살 때는 우리 회사가 사활을 건 엄청난 일인데, 한 발자국만 나와서 이 상황을 조망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그냥 웃긴다. 뭐 하는 거야?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이력서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 고체 샴푸가 진짜 중요한 사람이 있구나. 잘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이 있구나.
이걸 꼭 내가 할 필요가 있을까?
프로니까. 내게 없는 고민도 내게 있는 척 빙의해서 기획도, 매니징도, 마케팅도 척척해내야 프로 아닌가? 모든 직장인이 이렇게 사는 건데 내가 유난스럽게 생각이 많은 거 아닌가? 뭐 현수라고 채권이 본인의 인생 소명이어서 채권을 파나? 그냥 그런 일을 하게 됐고 이왕 한 거 열심히 하니 잘하게 된 거 아닌가? 그게 밥을, 그것도 아주 맛있는 밥을 먹여주니까 버티는 거고?
어찌어찌 짧은 양초 심지를 가지고 별 상관없는 일에 열정의 불을 지펴보다가, 그 심지마저 없어져서야 알게 되었다. 심지 없는 양초에 불을 붙이는 게 뭔지 몸으로 느끼고서 알게 되었다. 이왕 버티는 거면 내 삶의 연료가 있는 곳에서 버티는 게 맞다. 내가 두 번 살 수 있다면 어디서든 버텨보겠는데, 이 생에 의자로 태어난 나를 빗자루로 쓰고 있을 필요가 있나. 내가 뱉는 “찜찜함” 한 단어에도 마음이 아릴 수 있고, 이 단어를 쓸 때 나 자신에게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일을 하는 편이 좋겠다. 내가 겨우 버티는 일이 누군가에겐 연료고 생명일 수도 있는데.
+) 사진은 한창 일에 열정의 불을 지펴 손 모델까지 마다하지 않았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