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죽음 이후의 삶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고, 같아선 안된다
서울애인의 부고를 받았다. 순간 부모상인가 마음이 철렁했는데, 서울애인 이름 옆에 故와 30세가 적혀있었다. 한참을 봤다. 이런 상태를 인지 부조화라고 하는 건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20대 초반에 만나, 으레 그 당시 마음을 나눈 친구들이 그렇듯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하지만 그녀가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본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여성 창업가로서의 연대를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판교애인이, 그녀는 나의 서울애인이 됐다. 그리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받은 부고였다.
“내 사업을 시작하고 가장 좋은 점은, 이제 더 이상 바보인 척 모자란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그녀의 이 말 한마디가 자꾸만 내 마음을 건드렸고,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이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증폭시켰다. 그녀가 부연설명을 덧붙이기 전에도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사람 냄새를 풍겨야 하는 것. 맑게 아름답고, 똑 부러지고, 케이크를 무슨 3개나 먹어도 살 하나 안 찌는 그녀가 대기업에서 미움받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취한 액션이었다. 이제 자기 사업을 하니까 모자란 척은 무슨 자신이 가진 능력을 더 다듬어 잘 보여줘야 한다는 게 신난다고 했다. 무슨 사업을 준비하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 거라고 말하는 그녀가 신이 특별 조명이라도 켜준 듯 예뻐 보였다.
나는 무슨 척을 하고 사는지 들어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 앞에서는 이 회사의 비전이 곧 내 삶의 비전인 척, 팀원들 앞에서는 우리의 KPI가 목숨처럼 중요한 척, 친구들 앞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 결여된 척, 바보인 척, 아무 생각 없는 척. 그런 척을 하고 살면 그런 사람이 돼 간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게 내 마음에 들면 그렇게 살 텐데, 이렇게 살다가 어느 주말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면 그렇게 살 텐데. 친구의 죽음 이후의 삶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고, 같아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