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골 동네에서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현숙이와 나 둘 뿐이었다.
할머니가 추석 장 보러 가셨다가 빨간색과 파란색 운동화 두 켤레를 사 오셨다. 빨간색은 현숙이, 내게는 파란색을 주셨다. 현숙이는 할머니의 큰딸이자 내 큰고모의 막내딸로 고종사촌 동갑내기였다. 둘은 한 동네에 살며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늘 붙어 다녔다.
우리는 그 운동화를 학교에 갈 때만 신었고 집에 오면 고무신으로 갈아 신은 후 댓돌 위에 반듯하게 올려놓았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운동화는 학교 운동장에서 놀 때도 흙이 묻을까 봐 조심해서 놀았고, 비 오는 날은 신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혹시 비에 젖을까 봐 대청마루 귀퉁이에 모셔놓곤 했다. 당시 시골아이들은 대부분 고무신을 신었으니 빨갛고, 파란 운동화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며 현숙이와 내게는 가장 소중한 물건이기도 했다.
겨울방학이 끝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개학을 앞두고 더러워진 운동화를 빨기로 했다. 쇠죽솥에 막내 삼촌이 데워놓은 물이 남아있어 따뜻한 물에 운동화를 담그고 고사리 손으로 비누를 묻혀 솔로 싹싹 문질러 깨끗하게 만들었다. 막상 운동화를 다 씻고 보니 겨울이라 잘 마르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양지바른 곳에 말린다 해도 며칠은 걸릴 것 같았다. 우리는 빨리 말리고 싶은 마음에 쇠죽솥에 남은 열기가 있으니 솥 가 화덕 위에다 말리기로 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네 개의 신발을 쇠죽솥 주위로 엎어 놓고 대견스러워했다. '아마 저녁쯤이면 다 말라 있을 거야.'
그날은 건너 마을 작은집 막내 당고모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할머니가 먼저 잔치 집으로 가시면서 점심은 거기서 먹으라고 하셨다. 시골의 결혼식은 마을 잔치여서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결혼식을 구경하고 맛있는 떡과 고기도 먹었다. 신발을 불가에 엎어놓은 우리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날듯이 작은집으로 달려갔다.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하늘에서 가는 눈이 날렸다. 결혼식에 참석하신 어른들은 눈 오는 날 시집가면 잘 산다고 덕담을 했다. 얼굴이 검고 입이 튀어나와 못생겼다고 생각했던 당고모가 뽀얗게 분칠을 하고 찰랑거리는 족두리를 쓰고 연지 곤지 찍은 채 눈을 살포시 감은 모습이 너무 예뻐서 요리조리 얼굴을 살펴보기도 했다. 늘 쫑쫑거리며 도망 다니던 수탉과 암탉이 양발이 묶여 꼼짝달싹도 못한 채 파랑, 빨강 보자기를 몸에 두르고 초례 상위에서 눈을 멀뚱 거리는 모습도 신기했다.
우리는 어른들 틈에 끼어 당고모랑 사모관대 쓴 남자가 서로 절도하고 술잔도 오고 가는 것까지 구경하고, 맛있는 떡도 먹고 전도 먹고 고기도 먹고, 날아다니는 눈도 잡으러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막내 삼촌이 우리를 불렀다.
“너거 어데 갔다 오노?”
“작은집 잔치 갔다가 구경하고 밥 먹고 온다. 아재는 안 갔나?”
“지금 잔치가 문제가 아이다. 너희 신발 어데다 놔 둤노?"
“아, 맞다 신발!”
우리는 부리나케 사랑채 외양간으로 달려갔다.
“옴마야! 우짜노, 이 일을 우짜노?”
운동화 두 켤레가 하얀 바닥만 남겨놓고 누렇고 새까맣게 타 버렸다.
당시 부모님은 동생들과 도시로 나가고, 나는 할머니와 막내 삼촌과 살았다. 아버지가 논과 과수원을 팔아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나는 할머니께 착한 손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할머니께 응석을 부리지도 않았고, 할머니의 규칙을 어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니 할머니도 나를 혼내신 적이 별로 없다. 할머니와 나는 같이 살았지만 다정하거나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이건 할머니의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하든지 이 상황을 해결해야만 했다. 현숙이는 더러 할머니께 혼이 나곤 해서 야단맞을 각오를 했지만, 나는 야단맞지 않을 궁리를 했다.
가끔 시골에 오시는 아버지가 내게 용돈을 주셨다. 부산에 사시는 고모들이 다니러 오셨을 때도 용돈을 주셨다. 나는 그 돈을 다 모으고 있었다. 부모님이 쓰시던 작은방 장롱 안, 나비 무늬가 아름다운 초록색 양단 이불 사이에 넣어 두었던 그 돈을 꺼내 막내 삼촌에게 갔다.
“아재, 운동화 하나 얼마 하노?”
“와? 태워먹은 운동화 살라꼬? 니 돈 있나?”
“응, 돈 있다. 내 돈으로 현숙이 꺼하고 내 꺼하고 살끼다. 할매한테 말하지 마라”
아재한테 들은 바로는 내 돈으로 충분했다. 현숙은 날듯이 기뻐했다.
우리는 장날을 기다렸다. 며칠 뒤 장날이 되자 할머니 따라 몇 번 가 본 십리 길을 나섰다.
어른들이 아침 일찍 걸어간 그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지만 할머니께 혼나지 않겠다는 의지 하나로 현숙과 나는 서로 힘들다는 말도 않고 장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일 학년인 우리 둘은 손을 꼭 잡고 신발가게를 찾아다녔다. 할머니가 우리를 데리고 장에 가실 때면 장 볼 동안 맡겨놓는 먼 친척 할머니의 국밥집이 보였다. 현숙과 나는 혹시 국밥집 할머니가 우리를 알아보실까 봐 깜짝 놀라 뒷걸음치기도 하고 몇 번이나 같은 장소를 맴돌기도 하다가 다행히 신발가게를 찾았다. 할머니가 사 주실 때처럼 빨간색은 현숙이, 파란색은 내 것으로 샀다. 우리는 운동화를 두 손에 꼭 쥐어 품에 안았다.
오고 가고 이십 리 길이니 작은 걸음으로 돌아가는 길은 힘들었다. 길가 누런 풀 위에 주저앉아 쉬고, 바위 위에 올라가서 쉬고, 신작로 길가에 주저앉아 쉬기도 하며 쉬엄쉬엄 걸었다. 걷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운동화가 새것이라 걱정이 되었다. 색도 선명했고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서 누가 봐도 새 운동화였다. 이러다가는 할머니께서 금방 알아보실 것 같았다. 현숙이와 나는 또다시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했다. 우리는 각자의 운동화를 꺼내서 길가 나무 밑에 앉았다. 흙을 묻혔다가 털기도 하고 돌멩이 모서리로 옆을 살짝 긁기도 하고 안으로 손을 넣어 흙바닥에 문지르기도 하면서 새 신발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이 정도면 할머니도 못 알아보실 거야. 우리는 의기양양했다.
개학을 하고 새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다. 운동장에서 돌차기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물었다.
“근데, 너거 운동화 또 샀나? 새 거 같은데?”
현숙이와 나는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고? 새 거는 무신 새 거? 우리 둘이 운동화를 너무 깨끗하게 빨아서 그렇다 아이가!”
나는 파란색 운동화에 흙이 가득 묻을 정도로 돌멩이를 힘껏 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