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존중하며 기록하는 삶은 흔들려도 단단하다
시간은 흘러가고
감정도 흘러간다.
라디오 음악을 듣다가 감동적인 가사에 울컥하고, 하늘이 쨍하고 구름이 예뻐서 울컥하고, 감정은 갑자기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나를 내가 바라보며 고요하고 편안해지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면 겉으로 보이는 고요가 아니라 밑바닥까지도 고요하게 될까?
매일 강아지와 눈 맞추고
책을 읽고, 강의 준비를 하며, 배움도 하고, 글도 쓴다.
말이 생각을 앞지르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나를 알고 조율하며 사는 삶이 25년 정도 된다.
기질(성격)은 변하지 않지만 성품은 변한다.
나의 습관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 강점은 더욱 강화하고, 치명적인 약점은 보완해야 한다. 아무리 강점이 많아도, 치명적인 약점 하나가 원하는 나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
감정적인 판단과 임박한 착수로 허둥지둥하던 나의 패턴을, 이제는 객관적인 판단과 조기 착수로 보완하며 조율해 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따뜻하다. 꾸준함과 진정성을 품고, 친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려 한다. 단단해지기 위해 애쓰고, 연민을 잃지 않으려 한다. 통찰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배움을 멈추지 않고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내가 나를 떠올릴 때 드는 생각들이다.
성격이 급한 나였지만,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자 비로소 내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도시는 빠르고 소란스러웠다.
그 속에서 나는 늘 계획하고, 성과를 내고,
앞으로 달리기를 반복했다.
제주에 온 지 꽤 되었고, 이제는 시간적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도 마트에서 장을 보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나를 마주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내 삶은 아직도 달리고 있었구나.
요즘 나는 마트에서도 예전처럼 서두르지 않는다. 늘 집던 제품 대신 처음 보는 브랜드를 하나씩 들여다보며 천천히 걷는다. 조급함에 의지하던 옛날의 나와는 조금 다르게, 작은 선택 하나에도 여유가 스며들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파도에 반짝이는 햇살,
강아지가 뛰노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내 안의 긴장을 풀어준다.
때로는 책 속의 문장보다
한 걸음 걸으며 느낀 공기 한 줌이 더 큰 통찰이 된다.
2004년,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아 첫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주제는 부모교육이었고, 그 무렵 나는 학교와 기업, 관공서 등에서 부모교육 강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다.
결혼과 함께 직장을 정리한 뒤, 엄마가 되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부모공부는 어느새 나를 심리학과 코칭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부모교육을 배웠던 기관에서 강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나는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더 깊이 배우고, 열정적으로 강의에 임했다.
2008년 두 번째 책 역시 부모 교육서였고, 중국에서도 출간되며 뜻밖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 심리학과 '칼 로저스' 무조건적 존중과 공감은 나의 가치관과 너무도 맞았다.
2010년 『셀프리더십의 긍정적 힘』은 칼 로저스의 따뜻한 공감과 존중,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이 흐르는 강줄기 위에 놓여 있는 책이다.
'셀프리더십'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시절 책 덕분에 저자와의 만남, 특강, 강연 요청이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셀프리더십’은 내 삶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한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셀프리더십 코칭’을 개설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한 그 순간, 나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철학을 나누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동안의 특강은 대부분 2시간 남짓, 핵심만 빠르게 전하고 돌아서는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15주 동안 긴 호흡으로 셀프리더십을 전달할 수 있었고, 그 시간 속에서 학생들의 태도가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변화의 씨앗이 마음에 뿌려지고, 어느 날 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는 일, 그것은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를 다시 확인하게 해주는, 보람된 시간이었다.
‘자신을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철학적 성찰을 수업 속에 녹여냈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탐색하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고, 나는 그들의 눈빛 속에서 또 다른 배움을 얻었다.
2015년 제주에 집을 짓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쯤만 내려와 머물렀는데, 어느새 제주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2016년 『셀프리더십 코칭』이 출간되었고
2017년 개정판이 나왔다.
도시의 분주함과 강의실의 열기에서 물러나, 바람과 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을 선택했다. 결국 육지의 강의는 마무리하고, 제주는 내 삶의 새로운 터전이 되었다.
2016년 출간 이후,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왜 이 책이어야만 하는가’
그 물음 앞에서 나는 흔들렸다.
전문가로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답을 주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답을 주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완벽하게 쓰고 싶은 욕심과 불안, 모든 것이 섞여 나는 종종 멈춰 섰다.
그러나 흔들림 속에서 깨달았다.
전문가도, 삶의 길 위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 흔들림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글은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불안과 게으름, 완벽하지 않은 순간들까지도
나의 삶의 일부로 담는다.
멈추지 않고 묻고, 도전하고,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나에게 셀프리더십이란, 바로 그 여정을 끝까지 믿고 걸어가는 힘이다.
처음 제주에 정착했을 땐, 바다도, 바람도, 나무도 그저 ‘배경’처럼 보였다.
풍경이 예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자연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자연이 조금씩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즈음 유튜브를 시작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축구 경기도 업로드했다.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제주 유나이티드와 포항스틸러스 축구 경기였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감독과 선수들이 시합 전 준비하는 내용도, 생생한 경기 하이라이트까지 담아냈다.
강풍으로 패딩을 입고 떨면서 찍었던 영상을 업로드하고 조회수가 급증하고 있는데 알림이 왔다. "당장 영상을 내리지 않으면 법적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몸을 푸는 순간부터
경기 종료 후 퇴장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열심히 담아낸 영상이었다.
강한 바람 속에서도 애써 촬영했던 만큼 애착이 컸지만, 결국 모두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영상은 사라졌지만, 그날의 열기와 감동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나의 유튜브의 정체성은 '다섯 마리 강아지와 제주 풍경'이고 드론을 배운 건, 영상을 더 잘 담고 싶어서였다.
높은 시선에서 바라보는 제주,
새처럼 날아가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그 순간들을 한 편의 시처럼 담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바닷가를 걷는 강아지들의 작은 발자국,
바람 따라 춤추는 풀잎들,
그 모든 순간을 내 시선이 아닌
‘하늘의 시선’으로 담고 싶었다.
기대와 설렘으로 배운 드론은 처음 재미있었다.
드론을 배우면 처음 컴퓨터에서 드론을 띄우고 방향전환 연습을 한다. 하늘 높이 올리고 땅에 착지하고 좌우로 회전을 하며 드론을 조종한다.
화면에서는 재미가 있었다.
실제 작은 드론으로 연습을 하는데 속도 제어도 안되고 연습이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수십 번 실수하고,
갑자기 드론이 사라지고 곤두박질하는 드론의 움직임에 불안이 먼저 올라왔다.
기계는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한순간의 실수로
드론이 사람 위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손끝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내가 담고 싶은 마음보다
혹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커졌다.
설렘은 분명 있었지만,
불안과 책임감이 그 설렘을 집어삼켰다.
혹시라도 누군가 다치면 어떡하지,
한순간의 실수가 누군가의 평온을 해치진 않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욕망 대신 멈춤을 선택했다.
멋지게 찍고 싶은 마음보다
조심스럽게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포기’라는 말은 아쉬움을 동반하지만
그건 나에게 ‘내려놓음’이었다.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나이,
이제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걸 안다.
꿈은 컸지만,
현실적인 책임감이 더 컸기에.
멋지게 찍고 싶은 욕망보다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은 삶을 택했다.
처음엔 강아지들을 위한 기록이었지만 한두 명씩 내 영상을 찾아와 보고 구독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마음 한구석이 조심스러워졌다.
처음엔 그냥 ‘기록’이었는데, 지금은 ‘누군가의 시간’을 받는 일이라 생각하니 잘하고 싶어졌다.
조금 더 감각 있게, 조금 더 따뜻하게, 그리하여 유튜브 편집을 배우기 시작했다. 강아지와 함께한 시간, 그 따뜻한 순간들이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웃음이 되기를 바라며 편집된 영상이 많이 서툴러도, 진심은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유튜브 편집을 배우지만 생각만큼 능숙하진 않다.
온라인 영상 속의 설명은 쉽지만 따라 해 봐도 쉽지 않다. 오프라인에서 편집을 배워보지만 혼자 해보려면 인내심 테스트 시간이다.
지금 이 글도, 영상도 결국 나와 나의 하루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그저 흔들리면서도 살아냈던, 담담하고 단단했던 마음들이 있다.
브런치에 처음 올린 글은 심리학과 셀프코칭에 관한 배움들을 정리한 글이다. 글을 올리던 중 문득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에세이는 용기가 필요했다.
‘나만의 이야기’가 과연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을까? 독자의 귀한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닐까?
지금 예전 글을 읽어보면 글을 쓰던 당시의 감성을 지금은 표현할 수 없다.
그때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 브런치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브런치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내 일상을 글로 남기는 상황은 없지 않았을까 한다.
다시 돌아봤을 때 그때 참 잘 살았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기록하며 살아간다.
기록을 하면 하루가 조금 더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흘러가버릴 감정들,
흘러가도 괜찮지만,
그럼에도 붙잡고 싶은 마음.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지나친다.
풍경도, 말도, 표정도.
그러다 어떤 날은,
그 모든 지나침이 아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기록을 하게 된다.
포기와 설렘 사이,
나는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