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이렇게 써도 된다고? 이런 것에 대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고, 그 시가 "좋은" 시인지 아닌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아린 마음을 글로 표현하면서 충분히 교육받은 것처럼 보일지, 진짜 작가처럼 들릴지, 그런 모든 것들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내 고통과 혼란을 그토록 많이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귀한 선물이었다.(p294)
밤마다 ‘나만의 해방일지’를 쓴다. 하루를 지내면서 느꼈던 감정들 중에 담아두고 싶지 않은 감정을 해우소 역할을 하는 해방일지에 버린다. 그렇게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오늘의 무거움을 덜어낸다.
내 안의 헛된 불안과 혼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시간.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내가 한 행동과 말이 최선이었어!’라고 단정하는 확신의 내가 아니라 ‘내가 잘못한 일은 없을까? 내가 한 행동과 말이 최선이었을까?’를 되새김하는 시간으로 오늘의 나를 조금이나마 가벼운 나로 만드는 시간으로 마음의 디톡스를 한다.
무거운 마음을 쟁여놓는 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해방일지를 쓰며 하루를 돌아보는 것이 무조건 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돌아본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탓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내 의도와 노력이 왜곡당하지 않도록, 오해하는 나를 내가 만나지 않도록 오늘의 나를 돌아보며 해방일지에 비워내고 쏟아낸다.
비우며 내 마음을 다듬는다. 모가 나있는 부분을 깎아내고, 깎아낸 것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놓는다. 나를 지켜주는 내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도록 넘치면 덜어내고 허물어지려 하면 채우면서 내가 감수해야 할 내 것들을 보듬고 챙기며 나를 지킨다.
나만의 해방일지는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다. 그저 무난한 단어, 익숙한 글귀 그리고 반복되는 문장들로 꽉 차있다. 일상이 특별하지 않는 나의 삶에 특이한 단어들이 나타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적어내는 글이란 거기서 거기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간다
일에 맥락이 없다고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력하지만 무모하지는 않다
모르는 것은 모른 체 두는 것도 방법이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은 알 필요가 없다
모르는 게 약이다
마주 보고 잘 먹고 잘 보고 잘 쉬었다
사람들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
말은 너무 많은 것보다는 적은 것이 좋다
남을 판단하기 전에 나를 먼저 봐야 한다
바라는 대로 생각하다 보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행동하게 된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
소홀함으로 서운했다
틈이 생기지 않도록 집중하려 애썼다
참아서 싫었던 건지 싫어서 참은 건지 헷갈린다
말이 자꾸 엇나간다
싫은 것은 싫은 것이고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루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무료한 것이 다 지루한 것은 아니다
조급한 생각을 버리려고 할수록 더 조급해진다
오늘의 시간이 또 내 안에 쌓인다
별일이 없는 이 하루가 나에게는 별일이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생각나는 것들을 정리하듯 한 문장으로 쓰다 보면 내가 가벼워진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