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기록하기, 기록하기, 기록하기. 제발 일기를 쓰라
여자는 기록하고, 기록하고 또 기록하기 위해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 그날의 자신을 덜어내기 위해 일기를 쓴다.
낸시의 말처럼 그때의 자신이 정말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자신에게서 드러나는 망설임과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그 감정들이 여자의 세포 어딘가에 꽁꽁 숨어서 절여지고 있는지 아니면 이젠 휘발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그런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리하고 버려지는 판도라의 상자로 여자는 일기를 이용한다.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에서 낸시는 ‘그런 감정을 글로 써서 해방시켜야 한다. 캐럴라인 미스의 말대로 생생한 자전적 에세이가 곧 생물학이다.’(p133)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자는 숨겨두었던 감정을 다시 꺼내 글로 해방시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아가면서 절여져서 발효되어 삭아서 사라지거나, 오크통에서 숙성 중에 날아가는 위스키의 엔젤 셰어처럼 휘발되는 것으로 해방시키고 싶어 한다.
낸시의 경우처럼 그날의 감정을 들춰보는 일로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대비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 시간에서 자신의 이사의 과정이 두렵고, 망설여지고, 확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다음에 하게 될 이사에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대처하는 자신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복잡한 문제나 사안이라면 다시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해방이 아닌 더 큰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건 생물학이 아닌 심리학이 된다. 데이비드 리코의 『내 그림자가 나를 돕는다』가 되는 것이다.
여자에게 일기 쓰기는 내려놓고 정리하고 버리는 것으로 두려움과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듬고 그런 자신을 감싸 안으며, 집착하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떼어 놓기 위한 객관적인 시각을 장착하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자신의 뒷면을 담아 두는 작업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부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납득하며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는 해방의 도구인 것이다. 해서 기록해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일기에 다 쏟아내고 버린다. 판도라의 상자로 이용하면서 굳이 마지막에 있는 희망을 만나기 위해 괜히 열어보지 않는다. 여자에게 ‘일기’는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 그 자체로 ‘판도라’인 것이다. 일기 쓰기가 곧 선물인 것이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불안을 감수하며 자신의 어두운 면을 털어놓으며 일기장 앞부분에 적어 놓은 11세기의 티베트 승려 게셰 랑리 탕파의 <마음수행 시>를 보면서 삶은 스스로 어떻게 변화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버리는 것으로 스스로 해방시킨다.
<마음수행 시>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보다 귀한
생명 가진 존재들의 행복을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려는 결심으로
내가 항상 그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내 행동을 스스로 살피게 하고
마음속 번뇌가 일어나는 그 순간에
그것이 나와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당당히 맞서 물리치게 하소서
누군가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나를 욕하고 비난하며 부당하게 대할 때
나는 스스로 패배를 떠안으며
승리는 그들의 것이 되게 하소서
내가 도움을 주었거나
큰 희망을 심어주었던 자가
내게 상처를 주어 마음을 아프게 하여도
여전히 그를 내 귀한 친구로 여기게 하소서
직접, 간접으로 모든 이에게
은혜와 기쁨을 베풀게 하시고
내가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은밀히 짊어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