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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록 쾌선생 Oct 05. 2023

나를 내려놓는 용기

자신감과 자만심 그 사이에서, 솔직하게 물어보기 

당신은 자존심을 뭐라 생각하는가? 국어사전에서는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이라고 나온다. 남에게 굽히지 않는 자세. 이건 곧 나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왠지모를 승부욕이 강했던 나는 뭐든지 혼자 하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일이라고나 생각한 것일까. 다행히 뭐든지 중상으로는 해냈으니,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지만 반대로 고독해지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 보니, 혼자 끙끙대는 일이 많아졌다. 사업을 할 때는 왠지 모르게 고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선생의 마음이 들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그저 계속 내 이야기만 했다. '나도 이렇게 삶이 달라졌으니 당신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거에요!'라는 말들. 고객들에게는 그 상품이 왜 필요한지, 이것을 통해 무엇이 달라지고 싶은지 물어보지를 않았었다. 더구나 좋은 말만 듣고 싶어했기에, 질문도 '어떤 점이 좋으셨어요?'라고 표면적으로 질문했을 뿐,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지와 같은 건설적인 질문도 하지 않았었다. 


세종은 질문광이었다. 자연 현상에 대해서는 예전에 그런 사례가 없었는지 찾아보라고 하고, 문제가 있으면 책에서 묻고 또 물어 답을 찾아냈다.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어도 항상 신하들에게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황희는 ‘전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라고 했고, 허조는 ‘이때는 폐단이 일어날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실록 기사의 마지막에는 대부분 ‘~의 의견을 따랐다’라는 글이 많이 나온다. 


출처 : 여론조사


그의 질문력이 빛을 발했을 때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여론조사다. 새로 만든 공법을 진행해도 되겠느냐는 게 그의 질문이었다. “전국의 전·현직 관리는 물론이고 세민(細民·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에게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 그 결과를 아뢰도록 하라.” 이 질문에 대답한 백성은 무려 17만 2,806명. 경기, 전라, 경상은 찬성이 많은 반면, 농지가 좋지 않았던 평안, 함경, 강원도는 반대가 훨씬 많았다. 찬성은 57.1%, 반대는 42.9%. 표 차이로만 보면 찬성이 더 많아서 그대로 진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세종은 지방 관리들에게 공법의 장단점, 해결방안을 상고해서 아뢰라는 말도 덧붙였다. 결과를 본 세종은 공법에 찬성한 비율이 높은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부터 실시했다가 점점 다른 지역으로 확대했다. 무려 17년에 걸친 대사업은 백성에게 물음으로써 완성될 수 있었다.


만약 세종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질문보다는 명령이 주를 이뤘을 것이다.  경험이 부족하고 안목이 부족한 채, 뛰어난 인재를 놓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이로 인해 백성들과의 소통이 부족해 국가의 안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다행히 세종은 질문 노선을 택했고, 소통하는 군주로 자리매김했다. 자존심을 내려놓는 용기가 나라의 자존을 지키게 했다.  


사업 초기, 나는 무엇을 위해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던 걸까?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욕망, 너보다 내가 낫다는 오만,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독립심? 아마 무엇인가를 빨리 이루고 싶어 했던 나의 조급한 마음이 삐뚤어진 자존심을 만들었을 것이다. 혼자 온전히 누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 채, 함께 하는 분들과의 즐거움과 짜릿함을 느끼지 못했다. 


세종을 공부하며 깨달았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다고 해서 내가 부족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자존심이란 기꺼이 내려놓음으로써 완성된다고. 나이, 직급, 성별과 관계없이 모른다면 흔쾌히 물어볼 수 있을 때,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질문하는 것이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상대방을 인정하면서도 나의 품위를 지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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