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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다림 Oct 12. 2023

무조건 2번이야

지방 '읍'에 살고 있다.
아이의 초등학교도 읍에 있다. 그런데 과밀학교다. 학군이 좋은 것도 아닌데 학생이 많아 학교시설이 부족하다.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초등학교가 옮겨왔다. 그때 넓게 짓지 못해서 우리가 이사오기 전 운동장 귀퉁이에 건물을 신축했다. 작년에는 급식실이 좁아 공사를 했다. 그 기간동안 아이들은 배달 도시락을 먹었다.

내년에 새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하면 신입생은 더 많아진다. 그래서인지 2학기부터는 조리실을 공사한단다. 9월부터 또 급식을 못 먹게됐다는 설명과 함께 투표를 해달라는 안내장을 받았다.

1. 외부업체 도시락
2. 외부업체 위탁급식
3. 개인도시락 지참

아이를 기다리다 열띤 토론 중인 엄마들 이야기를 엿듣게 됐다. 학교는 더 이상 신축할 공간이 없어 도서관을 없애려고 했다가 반발이 심해 무산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조리실 공사를 할 수밖에 없는데 작년에 급식실 공사로 도시락을 먹는 동안 불만이 많아 이번에는 학부모 의견 수렴을 하게 됐다는 배경을 알게 됐다.


다음은 1-3 중에 뭘 선택할 것이냐에 대한 토론이었다. 엄마들은 1은 절대 안 된다였고, 5명의 엄마 중 3명은 3번 개인도시락을 선택하겠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일 하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1~2학년 때 방학 돌봄 도시락을 싸보낸 경험이 있어 한 학기 내내 도시락을 싸겠다는 엄마들이 존경스럽게 생각됐다.

정말이지 매일같이 새밥을 하고 출근 전에 따뜻한 반찬을 준비하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겨우 점심 한끼 먹고오는데 그것마저 내가 해야한다니! 두려웠다!


아이는 편식이 심하니 3번(개인도시락)을 해달라고 하면 어쩌지! 내 마음은 무조건 2번(위탁급식)인데!

아이랑 집에 오면서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두근두근


"엄마, 난 무조건 2번이야. 1번은 절대 안되고 3번도 절대 안돼."


엥? 아이가 도시락과 위탁급식을 헷갈린 건가?


"개인도시락 하고 싶다고?"


"아니. 2번 급식 하고 싶다고. 근데 애들은 다 3번이래. 어휴. 애들은 엄마 힘든 것도 모르나봐. 엄마 절대 3번은 하지마."


감동감동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근데 너도 도시락이 더 좋은 거 아니야? 좋아하는 반찬 배부르게 먹을 수 있잖아."


"아니야. 5일도 아니고 한 학기 계속 싸야된대. 그건 힘들어. 안돼."
하면서 꼭 안아주는 아들♡



아들의 이런 마음도 모르고 혼자 두려워하던 순간의 내가 미안했다.
엄마가 힘들 거라고 판단할 줄 아는 아들이
엄마를 생각보다 많이 아껴주는 아들이
한없이 감사해진 하루였다.

사랑 가득한 너의 눈길이
거짓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너의 말소리가
나에겐 늘 기적같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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