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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다림 Jan 01. 2024

힘이 나는 순간

또 한 학기가 끝났다.

2학기의 끝은 연말이라

'마무리'의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내가 꼰대가 돼가는 건지

매 학기 학생들을 만나면서

힘든 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올 한 해도 그랬다.

학생으로서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챙기는 학생들의 모습들이

특히 나를 버겁게 한다.


수업 시간에 무선 이어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왜 끼고 있어요?"

"음악 들으면서 수업 듣는 건데요."

라는 대답은 내 리액션마저 고장 낸다.

미안한 낌새 하나도 없이

당당한 태도가 더욱 당황스럽다.


"독감인데 병원 갈 힘이 없는데 공결 처리해 주세요."

"독감은 병원에서 진단받아야 공결 처리 가능해요."

"아파서 갈 힘이 없다니까요."

이런 전화통화 후에는

내가 선생님이 맞기는 한 건지

이 학생은 날 뭘로 보는 건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이런 것은 아니다.

일부의 몇몇 학생들이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그 몇몇이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실하고 멋진 학생들이 많다.

나를 꼰대로 만드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은 반에 들어갈 때는 나에게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럴 때는 그 반에서 가장 성실한 친구를 떠올리며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종강 인사를 건네고 떠나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나의 에너지원이었던 어여쁜 여학생이


"교수님, 별 것 아닌데 드리고 싶어서요."


하며 수줍게 편지지를 건네주었다.


편지

그것도 손 편지

강의를 처음 시작한 십여 년 전에 받아보곤

오랜만에 받아본 학생의 마음이 담긴 편지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다!

 

올 한 해 유난히 힘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학기 모두 학생에게 편지를 받았다.


1학기에 받은 보라색 편지에는 공황장애 발작으로 힘들었던 학기 초에 나의 격려 문자와 피드백이 큰 도움이 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2학기에 받은 파란색 편지에는 대학에 들어오고 의지할 곳이 없었는데 나에게서 담임 선생님 같은 따스함을 느껴 한 학기 잘 마무리할 힘이 생겼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의 노력이,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다가가

진심으로 전달된다고 생각하니

다시 힘이 났다.


2024년에는

나의 학생들을 탓하지 말고

내가 먼저 그들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어른이 되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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