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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Nov 30. 2016

산책

익숙한 언어와 이별하기

오늘은 조금 게을러도 된다고

흐린 하늘이 나를 속였다


창 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겨울비 젖은 억새처럼

피곤을 털고 책상 앞에 앉았다


밤새 머리맡을 기웃거리던

말들을 모았더니

꽤나 그럴듯한 오솔길이 되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그 길을 산책한다


엉성하게 놓인 돌을 밟고

듬성하니 핀 꽃을 보고

그 위를 지나는 구름을 보고 웃는다


마침내는 길 끝에 서서

그 길을 예쁘게 두고

한동안은 걷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나의 것은 없는 언어

나의 것은 없는 풍경


내가 없는 펜의 궤적

내가 없는 시의 거리


익숙한 것과 산책하듯 작별하는

11월의 마지막 밤


괜한 부지런을 떤 몸뚱이를 누이며

베갯잇에 스며들 상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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