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언어와 이별하기
오늘은 조금 게을러도 된다고
흐린 하늘이 나를 속였다
창 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겨울비 젖은 억새처럼
피곤을 털고 책상 앞에 앉았다
밤새 머리맡을 기웃거리던
말들을 모았더니
꽤나 그럴듯한 오솔길이 되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그 길을 산책한다
엉성하게 놓인 돌을 밟고
듬성하니 핀 꽃을 보고
그 위를 지나는 구름을 보고 웃는다
마침내는 길 끝에 서서
그 길을 예쁘게 두고
한동안은 걷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나의 것은 없는 언어
나의 것은 없는 풍경
내가 없는 펜의 궤적
내가 없는 시의 거리
익숙한 것과 산책하듯 작별하는
11월의 마지막 밤
괜한 부지런을 떤 몸뚱이를 누이며
베갯잇에 스며들 상념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