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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Oct 24. 2021

쓰는 삶,
쓰게 하는 삶.

글 쓰는 공간에서 글 쓰는 사람을 바라보며

글쓰기를 위한 나의 작은 공간


나는 제주 동쪽 끝 마을 종달리에서 ‘글쓰기 작업실’이라 이름 붙인 작은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말 그대로 글쓰기에 천착한 사람들과 글쓰기라는 행위를 위해 만든 공간인데, 내 책상이 있는 자리를 제외하고 5평 남짓한 공간에 손님용 책상 두 개가 있고, 그 위에는 타자기와 여분의 종이, 연필, 지우개 등이 놓여있다. 


글쓰기 작업실을 만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프리랜서 작가인 내 직업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나의 작업실로만 쓸 수도 있었던 이 소박한 공간을 대중에게 오픈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과거의 나에게서 찾을 수 있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도, PR 회사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일할 때도 언제나 글쓰기에 갈증을 느꼈던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절실히 원했다. 운이 좋게도 내가 꿈꿔오던 그것을 갖게 된 이상, 나와 같은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쓰기를 위한 공간에서,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삶’ 한 조각쯤 나누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책상을 비워두지 않고 타자기를 둔 이유는 일상에서 흔히 쓰는 컴퓨터나 휴대폰에서 벗어나 조금은 천천히,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감각을 보다 진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손끝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타건감, 그 힘만큼 진하게 종이에 찍히는 글씨, 다음 줄로 넘어가기 위해 레버를 밀어 캐리지를 옮기는 후련함까지. 컴퓨터의 백스페이스와 엔터키, 휴대폰의 터치감이 줄 수 없는 ‘타자기의 물성’이란 꽤나 동적이고 시원스럽다. 


특히 내 공간에 있는 타자기는 한번 틀리면 수정을 할 수 없는 기종이어서 자음 하나 모음 하나 신중하게 쳐야 한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익숙한 손님들은 그만큼 많이 실수하고, 그때마다 탄식 섞인 소리를 내뱉지만 나는 실수 또한 이 공간이 주는 재미이기를 바란다고 손님에게 늘 당부하곤 한다. 손님들은 알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지만.


30대부터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타자기를 접해 봤다는 손님이 많지만, 대부분 타자기라는 낯선 물건에 호기심을 느껴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타자기 사용법을 설명할 때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경청하는 어린 손님들, 자판을 한번 눌러보고 ‘우와 신기해!!’를 연발하는 손님들이 참 사랑스럽다. 조심스레 한 타 한 타 쳐보다가 곧 우다다다 소리가 들리면 살포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대부분 타자기로 글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타자기를 잠시 밀어 두고 사각사각 손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책장에 놓아둔 책을 골라 펴 들고 천천히 음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읽고, 사색하고, 기어이 무언가를 쓰는 사람들. 난 그렇게 이 공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사람들이 좋다. 




글 쓰는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것


내 자리에 앉아서 무언가를 그리고 쓰는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우선 이 공간을 내가 의도한 대로 즐겨주는 모습에 희열감을 느끼기도 하고, 과연 저 사람은 무엇을 쓰고 있을지 궁금증이 샘솟기도 한다.


대부분 좋아하는 시와 책의 글귀, 노래 가사, 명언들을 옮겨 적고 가곤 하는데, 부부나 연인, 친구 손님이 방문하면 서로에게 줄 편지를 쓰고 가기도 한다. 바로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는데, 편지를 교환하고 미소를 지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고 대충 짐작할 뿐이다. 비어있던 종이에는 얼마나 깊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담겨있을까.


가끔 어떤 작가나 유명인이 남긴 문장 외에, 본인이 직접 쓴 문장들을 보게 되면 기쁨은 배가 된다. 그래서 손님이 떠난 빈자리를 정리하면서 남기고 간 글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큰 재미다. 하루는 손님이 다녀간 자리에 같은 글을 반복해서 적은 듯, 가위로 오려낸 문장의 조각들이 남아있었다. 아마도 그의 어머니가 제주 여행을 온 그녀에게 보낸 문자를 옮겨 친 것 같았다. 


“좋은 밤에 잘 잤니? 엄마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하고, 책도 읽고, 식사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아들딸 생각도 하고, 태양 빛도 사랑하고, 푸르른 잎사귀들에게 이 봄에 다시 태어나서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그랬다... 내일 아침에 보자, 내 딸아.”


담담하게 아름다운 안부를 보며 나는 이 공간을 만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공간을 방문한 그녀를 통해 육지에서 딸을 생각하며 적어 내려간 엄마이자 한 여자의 귀한 문장이 여기 남게 되었으니. 그 종이 한 조각을 손에 쥐고 핑 도는 눈물에 미소 지었다는 건 비밀에 부치고 싶다.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을 위해


조금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나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쓰고 싶은 글은 잘 쓰지 못한다. 기능인으로서의 글쓰기는 익숙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건 어찌나 조심스럽고 부끄러운지. 그럼에도 나는 뻔뻔하게 글쓰기 작업실을 열었다. 이곳에 있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나만의 글을 쓸 용기를 얻지 않을까 하여. 가슴속 이야기를 한껏 풀어놓고 나면 후련해지는 날이 올까 하여.


우리는 금방 휘발되어 버릴 활자를 쓰고,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우리의 안에는 그보다 깊고 많은 생각과 감정이 넘실거린다. 글은 그것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충분치 않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글은 말보다 신중하고, 침묵보다 솔직하므로. 내가 누구든, 무엇이든 쓰기를 바라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몇 시간이고 쫓기지 않고, 사각사각 연필을 깎아 그리운 이의 이름 석 자를 써보거나, 오래된 타자기를 타닥타닥 서투르게 두드렸으면 좋겠다. 그러다 책을 읽기도 하고, 잠시 커피를 마시며 나와 담소를 나눴으면 좋겠다. 그러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다시 한참을 쓰다가, 문을 나서며 그 글을 내게 내밀었으면 좋겠다. 나는 글이 담긴 종이를 복사해 원본은 돌려주고 사본을 한 장 두 장 모아 두었다가 일정한 분량이 되면 책을 만들고 싶다. 쓰고자 하는 이, 기어이 써낸 이들의 책을. 그렇기에 쓰는 사람, 쓰게 하는 사람으로서, 쓰고 싶은 문장으로 온몸이 충만한 사람들을 위해 이 공간을 오래도록 지키고 싶다.


나는 오늘도 이 공간의 문을 연다. 어떤 사람이 이 공간을 찾아줄까, 그리고 그 안에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막연한 설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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