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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Jan 24. 2020

나는 왜 쓰기에 집착할까

엉덩이는 거들뿐

나는 늘 쓰고 싶어 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쓰고 싶다는 말과 생각'만' 한다. 생각에 뒤따르는 행동 즉,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쓰는 행위를 하진 않는다. 이런 나의 모순적인 행동을 두고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또 생각만 한다. '아니, 그러느니 그냥 앉아서 뭐라도 쓰면 되잖아?'라고 내적 포효를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면에서 7.1 채널 돌비 서라운드로 울리는 목소리일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쓰고 싶은 마음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쓰지는 않고.. 와, 쓰고 보니 진짜 이상하고 한심한데, 아무튼 난 이런 시간을 꽤, 정말, 말도 안 되게 오래 보냈다. 나는 나한테 왜 그랬을까.






내 기억에 가장 열심히 글을 썼을 때는 고등학생, 대학생 1~2학년 때였다. 고등학생 때는 이런저런 백일장에 자주 나가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당시 학교에 H.O.T 팬픽 붐이 일었는데, 나를 포함한 아이들이 인쇄한 팬픽 파일철을 열심히 돌려 읽는 것을 보고 저렇게 열성적으로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행에 옮겼다. 자습 시간이나 독서실에서 노트에 열심히 쓰고, 주말이면 족구 하러 외출한 오빠 방에 몰래 숨어들어 컴퓨터 메모장을 켜고 타이핑을 했다. 1.44메가 디스켓에 고이 담아 친구에게 전해주면 친구는 천리안인가 나우누리인가, 아무튼 어딘가의 팬 커뮤니티에 올려주었다. 매일 친구가 알려주는 조회 수와 추천 수, 댓글을 전해 들으며 실망하거나 뿌듯해하곤 했다. 사실 이때 쓴 팬픽이 가장 완성도 있고 대외적으로 발표도 한 나의 대표작이다. 그런데 제목도 기억이 안 나다니.


대학생 때는 싸이월드 전성시대였다. 세상에, 이렇게나 지극히 사적인 감성 폭발을 허용하는 은밀하고도 공개적인 사이버 공간이라니. '너희들이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게!'라고 다짐하듯 매일 기분에 따라 프로필 사진과 대문 인사말을 바꿨다. 감정과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그날 올린 글의 무드에 맞는 음악을 깔았다. 당시 대학 동기들은 나를 '싸이 여왕'이라 불렀다. 지금은 폐쇄되어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한데, 나이 먹고 들어가서 봤을 때 진짜 손발이 진퇴양난이었다. 'r r 눈물을 흘린ㄷr...☆' 까지는 아니었지만 과거의 나와 호르몬을 용서할 수가 없다.






식상한 얘기지만 한글을 빨리 깨친 덕에 책을 꽤 좋아했고, 중학교 땐 라디오에 푹 빠져서 심야 라디오 작가를 꿈꿨다. 사람의 감성이 말랑해져서 마구 주무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휘어잡는 작가를. 이후 조금씩 장르가 바뀌긴 했지만, 나의 꿈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당연히 대학교 진학도 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로 가고 싶었다. 불행히도(?) 우리 집은 엄마의 교육열이 상당했고, 나를 당신의 아바타로 생각하는 독점욕도 무척 강했다. '굶어 죽기 딱 좋은 글쟁이'는 안된다는 반대에 부딪혀 그래서 뭐 안 해도 되는 재수까지 하면서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 진학했다는 흔한 이야기.


하지만 사람 팔자는 알다가도 모른다고, 졸업을 앞두고 나는 방송 작가가 되겠다며 엄마에게 청천벽력 같은 선포를 날렸다. 엄마는 뒷목을 잡으셨다. 갈등은 좀 있었지만, 드라마처럼 부모님이 쓰러진다거나 하는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럴 거면 대학교 원서 쓰기 전에 반항 좀 할걸. 결국 나는 방송 아카데미를 가고 이후 방송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때 알았다. 나는 엄청나게 느리지만 어쨌든 가고 싶은 길을 가고, 무던해 보이지만 고집이 진짜 세다는 걸.


그렇게 방송 작가가 되어 5년 정도 일을 하고, PR 업계로 적을 옮겨 또 5년 넘게 홍보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했다. 솔직히 PR 업계에 몸담았던 시기는 배운 것은 많았지만 행복했던 시간은 아니었기에 자세한 서술은 생략.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은 나는 남이 필요한 글을 대신 쓰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혼자 쓰는 나의 글에 더 목말라한다는 사실 하나였다.


마지막 직장을 다닐 때, 어떻게든 탈출구를 만들어 보려고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의 드라마 과정 기초반을 등록했다. 경쟁률이 높은 편이라 면접을 봤는데 내 면접관은 태왕사신기와 추적자 등을 쓰신 박경수 작가님이었다. 뇌가 근본 없이 각기 춤을 추고 심방과 심실이 오작교에서 상봉하는 느낌이었다. 면접 중 '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으냐'는 작가님 질문에 나는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앵무새 죽이기를 꼽으며 이 책의 내용처럼 드라마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편견을 허물고 싶다고 겁 없이 답했다. 잠깐, 꿈도 컸던 과거의 나를 다 함께 비웃어 보자. 하하.


아무튼 작가님이 좋게 봐주신 덕인지 합격을 하고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 강의실에 앉아있는 시간은 쉬이 휘발되는 남의 콘텐츠만 만드는 회사 생활 가운데 내 것을 찾아가는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기초반의 미션은 수강 기간 중  60분짜리 단편 드라마 시놉시스와 대본 한 편을 쓰는 것이었는데, 나는 시놉시스까지만 쓰고 끝내 최종 대본은 내지 못했다. 담당하던 회사 프로젝트가 너무 버거워서 심신이 거의 가루가 되었던 시기였다는 핑계를 대 보지만, 어쨌든 대본을 내지 못한 건 부끄러운 기억이다. 대본은 못 냈는데 수료증은 나와서 더 부끄럽기도 하다. 대본을 못 봐서 아쉽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서 더더욱 부끄럽다. 과로사로 죽을지언정 대본을 쓰지 않았던 건 내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걸까.


자신에 대한 이런저런 부족함을 실감하며 '드라마 작가는 조금 더 나이를 먹고, 경제적 여유를 갖추고, 연륜과 통찰이 쌓이면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지나 보니 경제적 여유는 물론 연륜과 통찰은 세월만 흐른다고 쌓이는 건 아니더라. 경제적 여유가 특히.






퇴사 후 제주에 내려왔다. 한 달 살이를 하다가 두 달이 되고 그러다 눌러앉은 케이스다. 왠지 이곳에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당연히 생계가 발목을 잡았다. 크게 모아둔 돈은 없었지만, 다시 직장을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프리랜서로 여기저기서 외주를 받아 돈을 벌었다. 그나마 회사 생활할 때 쌓아둔 인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섭외, 취재를 하고 원고를 쓰고, 동영상 대본을 쓰고, 연설문을 쓰고 카피를 썼다. 어머, 근데 서울에서 하던 일과 다름없잖아?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먹고는 살아야 했으니까.


외주 일을 하고 나면 에너지가 바닥이었다. 다시 책상에 앉아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눈알과 짱구만 굴리며 머리로 글을 썼다. '음음, 그래 이런 소재, 이런 대사 괜찮은 듯. 뇌 주름에 저장~♡' 이런 식이었달까. 문제는 내가 기억력이 썩 좋지 않다는 거다. 가끔 생각나는 문장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했다. 정작 <소재>, <대사>로 카테고라이징도 안 하고 공통 키워드도 써두지 않아서 검색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메모는 천 개가 넘는데 왜 찾질 못하니.


작가 애니 딜러드가 '글쓰기에 대해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사실은 이것이다. 쏟아부어라, 날려버려라. 갖고 놀아라. 다 잃어라. 지금 당장 하라. 좋아 보이는 것을 나중에 쓴다고 모아두지 말고 지금 써버려라. 전부, 전부 다 지금 써버려라.'라고 했는지 뒤늦게 알았다. 잃어버린 문장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차단하고 제주에 온 이상 뭔가를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에서는 쉽지 않았다. 침대는 끈질기게 나를 유혹하고, 나는 참으로 나에게 관대했다. 침대에 누워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했다. 그러다 잠이 들곤 했다. 언제나 꿀잠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카페는 나와 맞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외향적이지만 실상 낯을 가리는 타입이라 오가는 카페 손님들의 거동 하나 소리 하나가 신경 쓰였다.


그러다 제주 동쪽 종달리에 작은 공간을 구하게 됐다. 5~6평 남짓 될까. 아주 작은 공간인데 나는 이곳에 로망을 듬뿍 가미하여 멋들어진 작업실로 꾸몄다. 그리고 '글쓰기 작업실'이라 이름 붙이고 손님들과 공유하고 있다. 낯가린다며? 뭐 여전히 낯은 가리지만 작업실은 내 영역이니까 카페보다는 낫다. 무엇보다 적게나마 돈을 벌 수 있다. 손님 책상엔 빈티지 문구들과 타자기, 빈 종이를 두었다. 손님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고, 사색하고 저마다 쓰고 싶은 글을 아주 천천히, 쓴다는 감각을 만끽하며 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처럼.


그럼 나는 무엇을 하느냐- SNS용 사진을 찍어 영업 공지를 올린다. 손님들을 안내하고 타자기 사용법을 알려주고 캡슐 커피를 내려준다. 커피 캡슐과 작업실 한편에서 파는 문구류의 재고를 확인하고 모자라는 물품은 발주 메일을 보낸다. 연필을 구매하는 손님에게 연필에 얽힌 스토리를 들려준다. 글을 쓰고 있는 손님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매출 장부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화장실 휴지통을 비우고 겨울이면 난로에 등유를 채운다. 화병의 물을 갈아주고 화분에 물을 준다. 가끔 들어오는 외주를 한다. 작업실 문을 닫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못 끝낸 일을 하거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몸을 맡겼다가 잠이 든다.


... 뭐하냐 나. 먹고사니즘과 게으름이 문제로구나.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김에 한 번 각 잡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한데도 내가 왜 글쓰기에 집착하는가에 대하여.


1. 가고자 했던 길을 가로막혔던 과거에 대한 반작용으로? 

물론 그것도 원초적인 이유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아,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이라면 제발 애들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크게 내버려 두세요.


2. 무언가 오롯이 쓰고 났을 때 느끼는 희열 때문에? 

느껴 본 지 굉장히 오래된 기분이긴 한데 이것도 큰 이유다. 결과물에 대한 평가야 어쨌든, 쓰는 과정에서 온몸의 세포가 흥분하며 집중했다가 마침표를 찍었을 때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어와 문장과 단락을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가지고 노는 일이 재미있다. 머리에 맴도는 생각을 뉘앙스까지 완벽하게 담은 적확한 단어와 문장을 보는 맛이란. 크.


3. 작가라는 직업이 멋져 보여서?

이런 생각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멋보다는 자신의 내면, 또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뼛속까지 내려갔다 오기를 반복하는 작가라는 사람에 대한 동경의 의미가 더 크다. 그 사유의 깊이. 어딘가 고장 나거나 비뚤어져서 남들이 못하는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4. 일단 입으로 내뱉은 꿈이라 철회하기 부끄러워서? 

꿈도 꿈이지만 앞서 말한 희열감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숙명이나 사명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써야 할 만큼. 남이야 뭐라 비웃던 말던 나에게 글쓰기는 그런 의미다.




이유를 정리해보니 일단은 내가 써야 하는 사람인 건 알겠다. 하루에 어떤 일을 하는지 적어보니 시간의 틈이 어디 있는지도 알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쓰는 일만 남았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구나.


글을 쓰겠다고 칩거 생활을 고집하니, 종종 어떤 글을 쓰고 싶냐는 질문을 받는다. 일차적으로는 시, 소설과 같은 순수문학을 하고 싶고 먼 훗날엔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답한다. 이차적으로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드라마 교육원 면접 볼 때 했던 편견 허물기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소재와 캐릭터, 플롯을 분명하게 만들어 두지는 못했다. 군데군데 큰 구멍이 뚫린 허술하고 방대한 그물망이 뇌척수액 어딘가를 돌아다닐 뿐이다. 이제는 그물망을 조밀하게 만들어야 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하여 독자를 낚는 어부가 되리라.


문제는 에너지다. 써야 하는 글을 쓰고 나서도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 나이를 먹을수록 그 에너지가 체력과 동일한 단어란 걸 알겠다. 체력이 떨어지니 만사가 귀찮고 짜증도 느는 것이 느껴진다. 숨쉬기 운동이 고작이었던 나는 몇 달 전부터 요가를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안 가는 날이 절반 이상이지만 엄청난 발전이다. 내 돈을 내고 레깅스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다니. 다행히 좋은 선생님과 수강생들을 만나서 아주 즐겁게 하고 있다. 민망해도 좋으니 체력이여 솟아라.  


얼마 전 종달리 동네 책방에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북 콘서트 차 씨네 21의 이다혜 기자가 왔었다. 토크 후 질문을 받는 시간에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는데, 일 외에 따로 쓰고 싶은 글을 쓸 에너지가 부족해서 힘들다. 현명하게 에너지를 분배하는 기자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알고 싶다.'라고 질문했다. 두 가지를 병행하는 건 당연히 힘든 일이니, 기대치를 높게 가지지 말라는 말이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일과 중 쓰고 싶은 글쓰기를 일어나서 맨 처음 하거나, 주말과 휴가에 몰아서 쓰는 방식 중 맞는 방법을 택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써야 하는 글을 쓴 후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쓰고 싶은 글을 쓴 후 써야 하는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을. 긴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하겠지만 1분씩, 3분씩, 5분씩, 하루의 틈에서 나 모르게 넘어가는 시간의 낱장을 한 30분쯤 당겨 쓰면 된다는 것을. 조언을 다음 날부터 바로 실천한 건 아니지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여백을 가늠하고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다. 저어기 맨 뒤에 있던 글쓰기가 우선순위의 루프탑에 입주할 수 있도록. 


그러니 엉덩이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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