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기술의 운명을 결정하는가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단어는 이미 우리들에게 진부하다.
그렇지만 기술이 '언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를 묻는 순간에는 이야기가 다소 복잡해진다.
다양한 기술들이 이미 우리의 일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지만, 사실 그 기술이 우리 세상에 드러나기까지는 뒤에서 많은 과정들을 거친다. 필자는 이번 연재를 통해서 기술들이 막히고, 변화하고, 확산되는 순간들 그리고 그 과정들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어떤 기술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대부분은 등장한 순간 곧바로 사회를 바꾸지는 못하였다. 대표적으로 전기자동차의 예를 들어볼 수 있다.
요즘 들어 우리는 어디에서든 전기차 충전 시설을 쉽게 볼 수 있고,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전기차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최초의 전기자동차는 2000년대에 들어서 발명된 것이 아니라, 1828년 헝가리 과학자 안죠시 예드림 (Anyos Jedlik)이 작은 전기 모터를 개발하고, 이를 사용해서 소형 자동차를 움직이는 실험을 한 것부터 시작된다. 이후에 1832년도 로버트 앤덜슨(Robert Anderson)이 최로로 전기자동차를 개발하였지만, 실제로 실용성을 가지게 된 것은 1870년대 이후였다.
그러다가 1890년도에 들어서 미국에도 전기자동차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에너지부(U.S Department of Energy)에 따르면, 1900년경에는 미국의 도로 위 자동차 중의 3분의 1이 전기차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당시에는 자동차의 주행가능 거리가 길지 않았기 때문에 충전 인프라 부족 / 배터리 무게& 효율 저하 등의 이유로 점점 사장되어 갔다. 게다가 전기자동차의 이러한 약점은 내연기관의 연료 효율이 향상되고, 1908년에 포드자동차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전기자동차는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시간차 (Time lag) : 기술이 발명된 시점과, 그 결과가 나타나는 시점의 차
기술은 언제나 세상을 바꿔왔다. 그러나 그 변화는 기술이 등장한 순간 곧바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술은 발명되자마자 일상 속으로 빠르게 들어오지만, 어떤 기술은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빛을 본다.
이 처럼 기술이 발명된 시점과 그것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시점 사이의 간극을 우리는 시간차 (Time lag)라고 부른다.
예컨대 전기자동차는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과거 19세기~20세기 초반 전기자동차는 아이디어도 있고 기술이 발명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그 기술이 온전하게 발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시간 차를 두고 21세기에 들어서야 조금씩 제도와 기술의 보완으로 인해서 소비자의 삶에 녹아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전기차의 성장도 요즘 들어서는 캐즘 현상이라고 불리면서 성장이 더디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이야기는 이후에 다루도록 하겠다.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를 넘어선다.
기술이 삶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영향력을 가진 것 이 바로 '제도'이다. 정부의 제도가 보조금이나 다양한 지원사업 등의 형태로 발휘되어서 기술이 육성이 되기도, 관세나 다양한 규제들로 작용하여 장애물이 되어서 기술의 진입이 보류되거나 지연되기도 한다.
또한 기술은 종종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 놓여있다. 어떤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관련 업계, 시민단체, 행정부처 등등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고 반응한다. 이때의 제도는 단지 해당 기술을 허용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보다는, 누구를 위해서 어떤 것을 허용할 것인가?라는 복잡한 선택을 요구받는다.
지금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기술의 물결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로봇, 생명공학… 기술은 달리지만, 제도는 여전히 느리다. 새로운 기술들을 둘러싼 논의는 더 복잡해졌고, 기술이 나아갈 방향에 제도가 어떤 역햘을 할지는 더욱 중요해졌다.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이러한 기술과 제도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 그 갈등과 타협의 순간들을 다양한 국가의 사례를 통해서 추적하고자 한다.
기술이 어떠한 원리로 작용하고, 어떠한 기대효과가 있는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진짜로 작동하고 상용화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지? 그 배경과 과정을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저자 소개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지연시키거나 멈추게 하는 건, 종종 제도와 규제였습니다.
저자는 대기업 기획/해외영업/전략부서 등에서 10여 년간 근무하며 산업 현장을 경험하였으며, 대통령 자문위원 활동 등을 하면서 기술정책을 전공으로 공학박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외국어고를 졸업 후 학부에서는 경영학과 정치외교학, 법학, 컴퓨터공학을 함께 공부했고, 현재는 미국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LL.M.) 과정을 밟으며 미국 변호사 시험을 준비 중입니다.
다양한 학문적 경험 그리고 산업계의 경험을 통하여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으며, 산업과 제도, 기술과 정책이 만나는 경계에서의 변화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여정을 써 내려가는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