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괜찮더라고요’
사실 다시 이때를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후회되는 한 가지가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20살 1월 1일에 친구들과 함께 보신각 종을 치는 것을 직접 내 두 눈으로 보고 듣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과 이미 숙소도 다 예약을 해두었다. 그러나 재수가 확정되자 차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나의 오랜 로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재수를 마음먹고 연말에 부모님과 서울에 살 곳을 알아보고 재수학원을 등록하러 갔다. 그리고 난 딱 1월 1일부터 서울에서 혼자 재수를 시작했다. 부모님도, 친구도 없이 내가 혼자서 알아서 생활하고 스스로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좀 버겁기도 했다. 나는 혼자 밥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재수를 하면서 혼밥은 일상이 됐다.
1년 열심히 해서 내 꿈을 이룬다면 그건 정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난생처음 순공부시 간 10시간을 찍어보고, 정말 많이 할 때는 13시간까지도 공부했다. 나름 재밌었다. 내가 하루 24시간 중 절반 정도를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했다. 인생에서 이렇게 매일매일 열심히 공부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과로 재수를 시작해서, 이과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인 ‘수학’을 매우 열심히 했다. 하루 공부 시간의 7-80% 정도까지 수학에 투자했다. 그렇게 6월까지 매일매일을 살아갔다. 그러나 결과는 생각보다 부진했다. 수학에 내가 투자할 수 있는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의대를 가기엔 정말 터무니없는 등급이 나왔다. 의대는 무슨, 그냥 내가 만족할 만한 대학을 가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스스로 많이 성찰해 봤다. 답은 하나였다. 그냥 이게 나라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 최선의 노력이었다면 앞으로 최선을 다해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완전한 이과를 포기하기로 했다. 이과 수학인 ‘가’ 형 수학에서 문과 수학인 ‘나’ 형 수학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때 나의 12년의 꿈이었던 ‘의사’는 저물었다. 지금은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때는 그동안의 내 모든 것이 부정된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 목표가 사라지고, 목적의식과 삶의 원동력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의학드라마조차 보지 못한다. 내가 되지 못할 꿈을 이룬 그들이 부러워서, 시기해서, 상실감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