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괜찮더라고요’
어른이 되는 과정은 아마 세상의 주인공이 본인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즉 어릴 때는 자신이 가장 우선이지만, 여러 상황을 마주치면서 스스로 타협한다. 그러면서 저절로 세상의 주인공은 본인이 아님을 인정하며 자신의 한계도 스스로 인지해 나간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나는 누구보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여겼던 사람이었다. 실제로도 그 시절에 세상은 내게 성취의 단맛만 주로 보여줬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당차고 밝은 아이였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는 할 일을 스스로 잘하는 어린이였다.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성적에 민감하셔서 나는 초등학생이었음에도 노는 것보다는 공부를 우선순위에 두고 지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기억의 한 조각은, 초등학교 2학년쯤 오후 11시에 너무 졸려서 자고 싶다고 말했는데 다음날이 시험이라 조금 더 복습하고 자야 한다고 답한 아버지의 단호함이 떠오른다. 물론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16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그때의 나는 상당히 서러웠던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학구열로 유명한 곳에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방에서 사는 평범한 집이었다. 다만 아버지가 좋은 대학에 대한 갈망을 갖고 계셔서 나도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잘하면 정말 좋아하셨다. 정말 세상의 전부를 안겨줄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셔서 어린 나는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공부를 했다. 단적인 예로 나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과를 받으면 부모님께 물질적인 보상을 받았다. 나는 특히 전자기기를 너무 좋아해서 반 1등을 하면 휴대폰을 달라는 약속을 가장 빈번히 한 것 같다. 아마 많은 부모님들이 주로 하는 회유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도 중학교 2학년 때, 반 1등을 해서 갖고 싶었던 휴대폰을 사서 행복했던 감정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는 반에서 1-2등을 유지하며, 성취의 쾌락으로 살아갔다. 또한 공부를 잘하면 어른들이 나를 꽤나 대단한 사람취급을 해주는 것도 좋았다. 난 어릴 때부터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른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다른 친구들보다 뛰어난 사람인 것 같아 스스로가 세상의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저절로 꿈도 크게 꿨다. 8살부터 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진짜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내 생각에 의사는 무엇보다 귀한 가치를 창출하는 이들로 생각됐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타인의 인생까지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처럼 보여 의사는 항상 내 준거 집단이었다. 타인에게 무엇보다 귀중한 가치를 선물하고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그들이 내게는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느껴졌다. 특히 외과 의사처럼 직접적으로 촌각을 다투며 사명감을 갖고 열중하는 일이 너무 흥미로워서 나의 완벽한 적성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라는 꿈을 갖고, 지금 생각하면 그냥 어린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 성적에 연연했다. 스스로의 행동도 많이 검열했고, 일상에서 오는 공부의 스트레스도 ‘외과 의사가 된 나’를 생각하며 버텼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의사가 되지 못한 스스로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세상에 내가 이루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었다. 그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