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괜찮더라고요’
난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노력해 왔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한계와 현실적인 벽 앞에 다른 목표와 다른 꿈을 갖기 시작했다. 12년 간의 꿈이 좌절됐지만, 그래도 앞으로 난 더 많은 시간들을 살아가야 하기에 새로운 동기 부여가 필요했다.
그래서 목표를 현실적으로 잡았다.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보편적이 수험생들이 꾸는 꿈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에 있는 중상위권 이상 대학에 가보자!, 대학에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새로운 꿈은 갖지 못했지만 대학에 간 후 생각해 보기로 유보했다. 그래서 남은 재수 기간 동안 새롭게 문과 수학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그래도 주어진 상황 내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새로 세운 목표에도 턱없이 부족한 성적이었으며, 크게 좌절했다.
‘난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일까?’
‘왜 이렇게 멍청할까. 그동안은 내가 노력한 만큼 나왔는데, 왜 수능은 그렇지 못할까. 차라리 고등학교 때 이렇게 열심히 했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걸까.’
등의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날 믿어주던 부모님도 이제는 더 이상 내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가장 놀고 싶을 나이였던 20살을 다 바쳐서 공부했는데, 내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 간 친구들은 1년 동안 새로운 친구들과 많은 경험을 하면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 남은 건 그저 ‘좌절’ 뿐이었다. 기존 친구들이 많이 응원해 줬었는데, 수능 끝나고 난 후 답장조차 할 수 없었다.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내 실력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러나 포기할 순 없었다. 최소한 내가 정한 스스로의 기준에 부합해야 사회에서 내가 당당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쉽게 ‘재수’를 결정한 것과 달리 정말 어렵게 ‘삼수’를 결정했다.
1년을 다시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숨 막혔지만, 누구의 시선보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는 참아야 하는 고통이라 생각했다.
이번엔 저번처럼 이과도 문과도 아닌 수능이 아닌, 온전히 문과로 시험을 치러보기로 했다. 사회 탐구를 처음 배워봤다. 그런데 너무 재밌었다. 특히 ‘생활과 윤리’는 매우 힐링이었다. 처음 알게 됐다. 나는 과학보다는 사회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중학생 때까지는 모든 과목을 다 잘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잘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새롭게 문과 공부를 하면서 내가 택한 사회 탐구가 훨씬 더 재밌고, 내가 더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통 속에서도 사회 탐구는 내게 소소한 행복이 돼주었다.
그런데 사회 탐구뿐이었다. 다른 과목에서 내가 크게 비약적 발전은 한 건 크게 없었다.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평범함을 인정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는 누군가의 입시 성공 스토리처럼 극적인 성취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물론 고3 때보다는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목표 대학 이상을 정시로 가기엔 여전히 부족했다. 내가 애초에 ‘이상’에 점철된 사람이라 쉽게 좌절하지 않는 탓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계속 공부해 나갔지만, 내가 만족할 만한 입시 성공은 불분명해 보였다. 이과를 졸업한 탓에 문과로 학생부 종합을 쓰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열심히 학생부를 채웠지만 다 무용지물이었다. 정말 많이 고뇌했다.
‘난 무엇을 위해 그동안 달려왔을까. 분명 매 순간 노력해 왔는데, 노력의 결과가 이 것일까.’